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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일상

20100623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by 막둥씨 2010. 6. 23.


며칠 전 옛 물건들과 서류들을 정리하다 일기장과 편지뭉치를 발견했다. 그 중 편지를 보자면 받은 것들도 있지만, 특히 내가 썼던 편지들의 사본은 일전에 찾던 것이라 꽤나 감격이었다. 게다가 자리에 앉아 읽으며 몇몇 문장에서 깜짝깜짝 놀랐다. 4년 전 쯤의 나는 지금 보다 훨씬 맑은 정신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순수했다. 지금의 나는 그 때의 내가 부럽기까지하다.


사실 얼마 전 부터 주변의 지인들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더 많은 시간을 들이고 고민해도 그 때 만 못하다. 지금 쓰고있는 한 편지는, 거진 일주일째 쓰고 있지만 무엇 하나 명확한 것이 없다. 또 한 번 부치지 못한 편지가 혹은 미완의 편지가 될 수도 있을듯 하다.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부유하는 내 자신이 문제다.


오늘 문득 모든것이 버리고 싶어졌다. 제일 먼저 생각한 것이 홈피, 그리고 두번째가 휴대전화기. 하지만 이러저러한 이유로 그 어느것 하나 버리지 못한다. 몇해 전 까지만 해도 종종 홈피와 휴대전화를 버리거나 리셋했었다. 하지만 이제 그 마저도 하지 못하는 입장에 선 것이다. 사회적 관계라는 것에 참여하기 시작했나보다.


어제 양파는 다 수확을 했었고, 끝내지 못한 마늘 수확을 오늘 오후에서야 겨우 끝냈다. 온 몸이 쑤시고 피곤했지만 다행이 하늘에 구름이 다소 껴 있어서 덜 더웠다. 마늘과 양파를 수확하고 난 자리에는 콩을 심을 예정이다.


사진//이틀간 끌어왔던 양파,마늘 수확을 마치고 돌아온 오후. 샤워를 하고 난 뒤 기분 좋은 바람이 살랑이는 집 앞 거리를 산책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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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 서정주


섭섭하게,
그러나 아조 섭섭치는 말고
좀 섭섭한 듯만 하게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애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엊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 아니라
한두 철 전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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贈衛八處士 (小陵 杜 甫)

人生不相見 動如參與商
今夕復何夕 共此燈燭光
少壯能幾時 鬢髮各已蒼
訪舊半爲鬼 驚呼熱中腸
焉知二十載 重上君子堂
昔別君未婚 兒女忽成行
怡然敬父執 問我來何方
問答未及已 兒女羅酒漿
夜雨剪春韭 新炊間黃梁
主稱會面難 一擧累十觴
十觴亦不醉 感子故意長
明日隔山岳 世事兩茫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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