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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기고

바나나 멸종위기 : 바나나는 불안하다

by 막둥씨 2013. 9. 2.

Photo(cc) via 24oranges.nl / flickr.com

어릴 적 시골에 살았던 내게 바나나는 명절음식의 하나였다. 일 년에 두어 번 설이나 추석을 맞아 도시의 친지네를 방문해야만 맛볼 수 있는 실로 귀한 과일이었다. 친척 어르신들은 내가 시골집으로 돌아갈 때 으레 바나나를 몇 개씩 싸주시곤 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도시에 사는 이들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통계청의 소비자물가지수를 살펴보면 1990년대 초반 바나나 가격은 지금보다 두 배 이상 비쌌다. 20여 년 전인데 가격은 두 배라니! 당시의 화폐가치를 생각하면 바나나의 위상은 더욱 높았을 것이다.

그러나 시대는 변했다. 이제 저렴한 가격에 한결같이 달콤한 바나나를 대형마트는 물론 동네 편의점에서도 쉽게 사 먹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바나나에는 아는 사람만 아는 여러 가지 불편한 사실이 숨어있다. 바나나 하면 떠오르는 하나의 이미지가 있는가? 문제는 거기에서 시작된다.


오직 하나의 바나나

대표적인 수입 과일인 바나나는 어떻게 우리의 식탁에서 가장 흔한 과일이 되었을까? 답은 식량체계의 산업화에 있다. 100여 년 전 열대과일인 바나나는 바나나 한 송이 나지 않던 미국을 중심으로 큰 사랑을 받았고, 다국적 기업들은 자본을 무기로 에콰도르, 과테말라 등 중남미 지역에 대규모 바나나 플랜테이션 농장을 만들었다. 수요는 공급을 낳고 공급이 또 다른 수요를 불러일으키면서 바나나 산업은 급성장했다. 하지만 치명적인 파나마병이 퍼지기 시작하자 바나나 산업은 위기에 봉착했다. 사실 모든 바나나가 병에 걸린 것은 아니었다. 쓰러져간 바나나는 당시 다국적 기업에 의해 대규모로 재배되던 품종 그로스 미셸(Gros Michel)이었다. 다른 바나나 품종을 길러 먹는 소규모 지역 바나나는 피해가 없거나 있어도 지역에 국한됐다. 그러나 세계에 유통되는 상업용 바나나의 대부분이 그로스 미셸이었기에 세계 바나나 시장의 타격은 컸다.

그로스 미셸은 1960년대 초 사실상 멸종됐고 바나나 판매는 중단됐다. 그때 운 좋게 파나마병에 면역력이 있는 야생 바나나의 돌연변이 캐번디시(Cavendish)가 발견됐다. 기업들은 다시 캐번디시를 심기 시작했다. 당신이 바나나 하면 떠올렸던 이미지, 오늘날 우리가 마트에서 사 먹는 그 바나나였다. 이렇게 캐번디시가 세계 플랜테이션 농장에 심겼다. 그중 한 곳이 말레이시아였다. 그런데 캐번디시도 병에 걸리기 시작했다. 조사결과는 아이러니하게도 파나마병이었다. 캐번디시가 면역력을 갖고 있었던 것은 특정 종류의 파나마병뿐이었다. 게다가 캐번디시 품종의 모든 바나나는 유전적 차이가 거의 없다. 씨가 없는 돌연변이인 탓에 모두 쌍둥이 복제품으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세상 모든 작물은 병에 걸려 죽을 수 있다. 이는 자연스러운 일이며 지금도 세계 농업지대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하지만 바나나는 달랐다. 하나의 품종이 독점한 대규모 바나나 농장에서 치명적인 병은 곧 전멸을 뜻했다. 오늘날 종 다양성 문제가 거론되는 이유다. 산업화한 식량체계가 우리의 식탁에 바나나를 갖다 놓았지만, 바나나를 빼앗아 가는 것도 바로 그 산업화한 식량체계가 될 가능성이 크다. 안 먹으면 그만이라고? 바나나가 과일이 아니라 식량인 아프리카 등 지역에서는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다. 그리고 당장 또 하나의 문제가 있으니 바로 농약이다.

Photo(cc) via Jerry Michalski / flickr.com


생산 전 과정이 농약 범벅

당시 파나마병이 창궐하자 기업들은 보유하고 있던 농약을 모조리 쏟아 부었다. 파나마병뿐만이 아니다. 평소 해충에 약한 바나나를 지키기 위해 그리고 다양한 병이 유행할 때마다 기업들은 농약을 아낌없이 살포했다. 하지만 농약은 당장에는 병을 치료하는 것처럼 보여도 장기적으로는 병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농약의 양도 더불어 늘어났다. 악순환이다.

바나나는 줄기에 매달려 있을 때는 초록색을 띤다. 수확하고 일주일 정도 지나면 우리가 아는 바나나의 모습대로 노랗게 익으며 물러진다. 기업들은 세계 각지로 바나나를 수송하기 위해 이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그래서 바나나는 수확한 후에도 농약을 치게 됐다.

<국제농약행동네트워크>의 2007년 바나나 잔류농약 검출 빈도 조사 결과를 보면, 63.7퍼센트에서 티아벤다졸이 검출됐다. 그 뒤로 이마잘일이 26퍼센트, 5-히드록시 티아벤다졸 7.4퍼센트, 아족시스트로빈 4.2퍼센트, 페닐페놀 2퍼센트로 뒤를 이었다. 이 외에도 피리메타닐이나  카바릴, 클로로피리포스 등이 검출됐다. 모두 바나나의 신선함을 유지하기 위한 방부제나 살균제 등이다. 이들은 구토, 설사, 두통을 유발하고 중추신경계 억제 증상의 원인이 될 수 있으며 일부는 발암유발 가능성 물질이다. 침팬지조차 무농약 바나나와 농약을 사용한 일반 바나나를 주면 일반 바나나를 먹지 않는다고 하는데 인간은 아무런 의심 없이 먹고 있다.

한편 <국제농약행동네트워크>의 조사 결과에서는 수입 유기농 제품에서도 일부 잔류농약이 검출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유기농인데 농약이라니 어찌 된 일일까? 이는 생산되는 현지에서는 유기농 인증을 받아도 유통되는 과정에서 농약이 살포될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실제 우리나라에서도 유기농 과일이 검역 과정에서 해충이 발견되면 시아나나트륨이나 메틸부로마이드로 소독처리를 하는데, 이렇게 화학적 처리과정을 거친 후에도 버젓이 유기농 과일로 팔린다는 지적이 몇 년 전 국회 농림수산식품위원회 소속 의원으로부터 제기된 적이 있다.

Photo(cc) via Thomas Abbs / flickr.com


건강한 바나나는 가능할까?

사정이 이렇다 보니 수입 바나나는 먹지 않는 게 가장 좋다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이미 얽히고설킨 국제 무역시장에서 홀로 벗어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무엇이 최선일까?

먼저 유기농 바나나를 선택하자. 비록 일부 유통과정에서 아쉬움이 있긴 했지만, 그럼에도 유기농 바나나는 우리 소비자의 건강뿐만 아니라 현지 바나나 농장에서 농약에 중독되어 쓰러져간 노동자들을 살리는 길이다. 또한, 바나나는 유통과정에서 큰 비용이 발생하는 수입과일이지만, 소비자가 그 비용을 부담한 적은 없다. 바나나가 저렴한 이유 중 하나일 터, 공정무역 제품이 대중화 되어야 한다.

한편,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바나나가 생산되고 있다. 제주산 바나나다. 제주의 바나나는 가격이 비쌌던 1990년대 초까지 제주 농민들에게 효자작물의 하나였다. 1990년 제주 바나나의 총판매액 544억 원으로 제주도 전체 농업 총 판매액의 9.7퍼센트를 차지해 감귤 다음가는 소득 작물이기도 했다. 그러나 바나나 수입 전면 개방과 더불어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으로 국내 재배의 수익성이 떨어졌고 제주에서 바나나 농장은 사라졌다. 그러다 2006년부터 지자체와 농협이 제주산 바나나를 살리기 위해 노력했고, 현재 다시 바나나 생산이 이루어지고 있다. 생협과 농협 하나로마트를 중심으로 판매중인 제주의 바나나는 국내산이므로 유통과정의 문제가 줄어든다.

풀어야 할 숙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현재 전 세계 바나나의 80퍼센트를 단 5개 기업이 유통하고 있다. 캐번디시에 맞춰진 대량 생산, 대량 유통 구조 속에서 바나나의 위기는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다양한 바나나를 찾아야 함은 분명하다. 다행히 현재 시장을 장악한 캐번디시의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사실을 업계도 이미 알고 있다. 헌데 기업들은 그 돌파구를 유전자변형(GM)에서 찾고 있다.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우리가 원하는 건강한 바나나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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