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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사 비오는 날 길상사를 찾았다. 법정 스님이 입적하신 이후로 길상사 방문은 처음인듯하다. 늘 굳게 잠겨 있던 법정스님의 거처가 지금은 개방돼 있었다. 물론 암자에서 지내셨던 법정스님이 거의 이용하시진 않던 방이지만, 평소 길상사는 언제든 스님이 오시면 이용하실 수 있게끔 비워두고 있었다. 입적 이후 지금은 법정스님의 영정사진을 모셔 방문자들에게 개방한 것 같았다. 마치 스포츠 선수에게 최고의 영예가 영구 결번인 것처럼 이 방도 법정스님을 기리기 위해 계속 비워두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포함한 방문자들은 처마 아래 툇마루에 앉아 떨어지는 물방울을 바라보며 빗소리를 들었다. 조용한 경내 분위기가 평소에는 세간의 소리에 묻혀 듣기 힘들었던 자연의 소리를 더욱 키웠다. 모든 것이 평온했고 각자의 내면의.. 2015. 5. 18.
이상한 결혼식에 초대받다 혼인 적령기에 접어든 건지 주위 친구들이 하나둘 시집·장가를 가고 있다. 축하를 건네기 위해 주말이면 종종 예식장을 찾곤 하는데, 몇 번의 결혼식에 다녀본 결과 나는 신혼부부라는 게 공장에서 찍어내는 건 줄 알았다. 개성 있는 결혼식이 그리 많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긴 결혼생활에 비하면 찰나에 불과한 예식보다 결혼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결혼을 앞둔 친구나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신혼부부들의 속내를 들어보면 그것도 아닌 게 결혼식을 준비하며 대부분 많이 싸웠다고 한다. 심지어는 결혼 준비과정에서 헤어지는 예비부부도 있다. 지난 주말의 결혼식과 이번 주말의 결혼식이, 심지어는 30분 전 치러진 어느 부부의 결혼식과 지금 내가 참석한 결혼식이 사람만 바뀌었을 뿐 판박이.. 2015. 5. 2.
미국 고교수석 졸업생의 연설 예전에 선(仙)을 공부하는 수도자가 있었는데, 하루는 스승을 찾아가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제가 지금부터 열심히 노력하면 도를 깨우치는 데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스승은 곰곰이 생각한 후, “10년 정도?”라고 대답했습니다. 제자가 다시 물었습니다: “제가 빨리 깨우침을 얻기 위해 진짜 많이 노력하면 얼마나 걸릴까요?” 그러자 스승은 “그렇다면 20년 정도 걸리겠군”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제자가 또 물었습니다: “제가 진짜, 진짜, 무진장 노력하면 어떨까요?” 스승은 이 질문에 대해 “30년”이라고 묵묵히 대답했습니다. 실망한 제자가 다시 물었습니다: “이해를 못하겠습니다. 열심히 노력할수록 오래 걸린다니요? 왜 그런 말씀을…”. 그러자 스승이 말했습니다: “하나의 목표를 세워놓고 정진하면, 하나의 길.. 2015. 4. 26.
0416 "제가 어렸을 때 촌에서 자랐는데, 송아지를 먼저 팔면 어미 소나 아빠 소가 밤새도록 웁니다. 하루만 우는 것이 아니고, 일주일, 열흘 끊이지 않고 웁니다. 그냥 우는 것이 아니고 끊어질 듯이 웁니다. 그러면 적어도 제 기억에는, 송아지를 팔았던 우리 삼촌, 동네 아저씨가 그 다음 날 아침에 담배 하나 피워 물고 더 정성껏 소죽을 끓였습니다. 영문도 몰랐지만, 동네 아이들은 그 소 앞에서 지푸라기 하나라도 더 먹이려고 했고, 왠지 모를 죄책감을 함께 느꼈습니다. 저도 그 소의 눈을 오래 바라보면서 그 소를 어루만졌던 기억이 납니다." "'저 소는 왜 우냐'고 타박하는 이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하다못해 소에게도, 짐승에게도 그렇습니다. 그러면 적어도 기한은 우리가 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소가.. 2015. 4. 14.
생태적 시각과 인간의 지성 동태, 황태, 명태와 견주는 생태 말고 생태적 시각, 생태주의 등 용어 속 생태란 무엇일까요?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단순히 ‘생물이 살아가는 모양이나 상태’라고 정의하고 있지만, 실제 생태라는 용어의 쓰임 속에는 세상을 바라보는 기본 틀로서의 시각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쉽게 이해하려면 ‘환경’과 비교해보면 됩니다. 우리나라는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지나친 개발중심주의로 파괴된 환경을 보호하고 복원해야 한다며 환경의 중요성을 재조명하는 사고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하지만 이 시각에는 근원적인 한계가 있었으니 어쨌든 인간중심적이었다는 부분입니다. 세상을 지배하는 고등 생명으로서 인간이 존재하고, 그 인간을 둘러싼 나머지를 환경으로 치부했습니다. 이런 시각과 사고 아래에서는 아무리 환경을 생각한들 .. 2015. 4. 14.
고작 쌀밥 한 그릇이라고요? 1980년에 있었던 일이다. 당시 우리나라는 대규모 여름 냉해로 쌀 생산량이 전년의 3분의 2수준으로 급감하는 일이 발생했다. 식량 수급에 비상이 걸린 정부는 쌀을 구하기 위해 국제 곡물 회사에 매달렸다. 당장 밥줄이 끊길 지경이니 부르는 게 값이었고, 결국 국제 시세의 2.5배나 지불하고 쌀을 구매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만약 다른 국가나 기업들에 잉여가 없거나 혹은 의도적인 이유로 쌀을 팔지 않았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한 상황이다. 불안한 우리의 식량 안보 식량이 무기화된다는 건 이제 옛말이 아니다. 위 경우처럼 특정한 이유로 단지 한 해의 먹을거리만 부족하다면 어떻게든 버틸 수 있으리라. 하지만 더는 식량 생산에 투자하지 않아 먹을거리를 생산할 땅도, 씨앗도, 사람도, 기술도 없다면 어떡해야 할까.. 2015. 4. 13.
골프장 피해 심각한데 홀 증설하겠다는 고양시 수도권 녹지 최후 보루인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에 골프장이 들어선 건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건설교통부는 4개의 지역에 대해 “상당히 훼손됐거나 환경적 보존가치가 적은 지역”이라며 골프장 허가를 내줬다. 그렇게 수도권 그린벨트에 처음으로 세워진 골프장 가운데 한 곳이 바로 고양시 일산동구 산황동에 들어선 스프링힐스 골프장이다. 그런데 산황동 골프장이 몇 년 사이 증설을 계획하고 있다. 현재 9홀인 규모를 갑절인 18홀로 늘리겠다는 것이다. 이미 심각한 수준인 주민 피해 도시에 접해 있지만 여전히 자연부락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마을 산황동은 마을 산에 있는 흙이 붉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 마을은 예부터 유명한 채소 재배지였다. 인근에 유명한 채소재배지가 몇 군데 있었지만, 황토에.. 2015. 4. 13.
이별의 문장 "우리의 만남이 너무 짧았다고 네게 불평과 한 섞인 말들을 했었는데, 한가한 어느 날 홀로 앉아 조용히 지난 여름날들을 떠올려 보니 봇물 터지듯 추억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 정말로 수많은 일들이 다양한 장소에서 그 짧은 시간에 있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는데, 그러나 또 다시 언제나 ‘좀 더’ 라는 생각과 아쉬움과 그 모든 것들의 여운이 나의 마음 저 안쪽에 남아 조용히 가라앉아 있는 것이, 일상에 몸담아 사소한 일을 하다가도 문득 의지에 아랑곳 않고 다시 떠올라 감정을 휘저어 결국 불안한 영혼을 가진 나라는 인간을 잊지 않게 하는데, 그것은 꽤나 고통스럽고 또 애절한 것이어서 과연 이런 상태가 나를 위해 너를 위해 우리를 위해 좋은 것인지는 혹은 나쁜 것인지 도무지 분간이 가질 않고 또 어떻게 이 모든.. 2015. 4. 10.
기본소득 제정으로 매달 40만 원씩 받을수 있다면? 일을 하든 안하든 월급과는 별도로 매달 40만 원씩 여러분에게 지급된다면 어떻게 사실 건가요? 게다가 조건 없이 국민 1인당 지급되는 돈이라면? 예를 들어 4인 가족의 경우 월 160만 원을 평생 연금처럼 받을 수 있다면? 분명 이런 돈이 생긴다면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겠다는 분이 많으실 겁니다. 생계를 위해 포기했던 꿈을 다시 쫓을 수도 있겠고, 지금보다 일하는 시간을 줄여 여행을 한다던가 책을 보는 등 여가를 늘려 삶의 질을 높이겠다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허무맹랑한 소리 같다고요? 충분히 그리 들릴수도 있지만 사실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얼마 전 재미있는 책이 한 권 나왔습니다. 녹색당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는 하승수 변호사가 쓴 라는 책입니다. 이 책은 생태적 전환과 해방을 위해 국민들에게.. 2015. 4.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