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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전국일주 캠핑

[전국일주 3일차] ① 정선 아우라지에서의 하루

by 막둥씨 2012. 8. 2.

라면봉지를 이용, 비닐을 따라 흐른 물이 평상을 적시지 않고 밖으로 빠지도록 만들었다

 

지난 밤 피곤해서 일찍 잠이 들었다가 새벽 1시에 깼다. 천둥번개와 함께 억수같은 비가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텐트 지붕으로 떨어지는 빗소리에 다시 잠이 들 수 없을 지경이었다. 걱정이 되어 텐트를 나와 한 번 더 점검을 했다. 텐트 위에 씌워놓은 비닐에 몇몇군데 물이 고여 있었다. 돌을 아래에 괴어 사선처리를 해 물이 흐르도록 만들었다. 

 

텐트를 한 바퀴 도는데 갑자기 후드득 소리와 함께 검은 물체가 평상 아래에서 튀어나왔다. 너무 놀라 소리도 못질렀다. 후레쉬를 비추어 보니 고양이 한 마리였다. 밤 사이 고양이 울음이 아련하게 들리는 꿈을 꿨다 싶었는데 꿈이 아니었던 것이다. 아마 비를 피해 정자의 평상 아래로 숨어든 것 같았다. 그런데 이 녀석이 도망을 가지 않고 3미터쯤 앞에서 나를 원망스런 눈빛으로 쳐다보며 '냐옹'하고 울었다. 순간 다시 후드득 한 마리가 나왔고 잠시 뒤 또 한마리가 튀어 나왔다. 총 3마리의 고양이가 비를 피해 있었던 모양이다. 쫓을 마음을 없었는데, 비를 맞으며 어둠 저편으로 사라지는 고양이들의 뒷모습을 보니 미안했다.

 

그렇게 밤이 지나고 3일차 아침이 밝았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는데, 나가 보니 정자 아래 신발을 놓아둔 바닥에 빗물이 고여 우리의 삼선슬리퍼가 둥둥 떠다녔다(나중에 이 웅덩이는 텐트에 들어가기 전 발을 씻는 용도로 사용했다). 이 상황에선 텐트를 접을 수도 없었고 결국 아우라지에서 하루를 더 보내기로 결정했다. 인터넷으로 날씨를 확인해보니 비가 150밀리나 왔다고 했다. 비가 텐트 내부에는 들이치지 않았으니 이만하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맛비로 '물어난 불'

 

아우라지엔 검붉은 흙탕물이 무섭게 흐르고 있었다. 나룻배는 자리를 좀더 뭍쪽으로 옮겨 묶여 있어 오늘은 절대운행 불가임을 알렸다. 뱃사공 할아버지도 출근하시지 않을것이 분명했다. 여송정과 건너편 공터를 잇는 돌다리는 단순 잠긴 것인지 아님 떠내려 가버린 것인지 보이지 않았다. 나는 푸딩에게 외쳤다. 

 

"저기 물어난 불좀 봐!!"

 

눈치채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무섭게 흐르는 물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던 이유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듣고 있던 푸딩도 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였고, 오직 이상함을 느낀것은 내뱉은 나 자신 뿐이었다. 그리고 이 장면은 앞으로 우리에게 '물어난 불'의 추억으로 남았다.

 

라면으로 아침을 때운 뒤 간단한 설거지를 위해 화장실로 갔다. 잠시 뒤 승합차에서 예순은 넘어보이시는 세 분의 어르신들이 내렸는데 그 중 한번이 내게 여행중이냐고 물으시며 어디서 왔냐고 하셨다. 나는 안동을 출발해 봉화에서 하루를 보낸 뒤 - 정확히는 안동이지만 - 태백을 거쳐 지금 이곳으로 왔다고 대답했다. 어르신은 고개를 끄덕이시더니 본인의 젊은 시절 여행 이야기를 꺼내셨다. 

 

"나도 젊은 시절에 친구들과 부산을 출발해 예천, 영주, 영월을 거쳐 강릉까지 간 적이 있어요.  그때 봉화에는 아무것도 없을 것 같아 가지 않았는데... 뭐 볼 것 있습디까?"

 

나는 청량산이 있다고 말씀드렸다. 또한 계곡이 멋지다고. 어르신은 깊고 아름다운 계곡이야기에 공감하시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나는 신이 나서 대답했다.

 

"오다가 차가 퍼지는 줄 알았습니다. 봉화에서 태백으로 올때요!"

 

그만큼 높고 깊은 골짜기와 산이 있는 곳이 봉화였다. 동료분들이 차를 출발시키려고 하자 어르신은 그만 차로 돌아가시려다 다시 내게 몸을 돌려 말씀하셨다.

 

"나가 교직원 생활을 오래 해서 강연을 많이 들었는데... 옛날에 박사님 한분이 그럽디다. 젊었을 때 많이 놀러 다녀야 된다고. 그래서 내가 반박을 했죠. 젊었을땐 열심히 일해야 하고, 나중에 나이를 먹고 나서는 실컷 돌아다녀야 한다고. 그런데 막상 나이를 먹으니 무릎이 아프고 체력이 안돼서 못다니겠어요. 젊었을 때 많이 여행을 다녀야 해요."

 

어르신은 마지막으로 내게 건승을 빌어주시고는 떠나셨다. 비가 와서 조금 쳐져 있었는데, 어르신의 말씀을 듣고 나니 앞으로의 여행에 대해 좀 더 자신감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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