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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전국일주 캠핑

[전국일주 2일차] ② 태백체험공원

by 막둥씨 2012. 7. 31.

함태수갱의 초입. 조금 더 들어가면 엘리베이터 시설이 나온다.

 

처음 태백으로 올 때는 태백석탄박물관으로 가는 중이었다. 하지만 중간에 마음을 고쳐먹고 태백체험공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발길을 돌렸다고는 하지만 바로 근처라 돌아가거나 다른길로 갔던 것은 아니다.

 

 

태백체험공원으로 간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현실적으로는 석탄박물관 보다 입장료가 더 쌌다(석탄박물관은 입장료 2000원에(도립공원입장료) 주차료도 있지만, 태백체험공원은 입장료 1000원만 내면 된다). 또한 태백체험공원의 현장학습관은 폐광된 함태수갱과 그 탄광사무소를 이용해 만들어 졌으며 실제 갱도와 연결이 되어 있어 옛 태백의 모습을 추적하기에 안성맞춤이었던 것이다.

 

 

영화 <꽃피는 봄이 오면>의 한 장면

나에게 탄광의 이미지가 각인된 것은 영화 <꽃피는 봄이 오면>을 통해서였다. 교향악단 연주자를 꿈꿨던 주인공 현우(최민식 분)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강원도 도계중학교 관악부 임시 교사로 부임하게 된다. 처음엔 건성으로 가르치며 하루하루 버티며 살지만, 관악부 아이들과의 생활 속에서 그의 가슴속에도 어느덧 희망의 싹이 자란다. 하지만 가난한 탄광부인 아버지들 눈에는 아들의 관악부 짓거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급기야 관악부는 탄광촌에서 음악을 연주하게 된다. 그리고 수많은 광부 아버지들이 탄진을 뒤집어쓰고 갱도를 나올때, 그들의 자식들이 연주하는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이 울려퍼진다. 매우 벅찬 풍경이다.

 

 

태백체험공원 현장학습관으로 들어가니 관리인 아저씨 한 분이 계셨다. 매표를 한 뒤 아저씨가 어딘가로 급하게 가신다. 뒤따라가 보니 2층 전시실 전원을 올리고 있었다. 이 건물은 총 3층 건물로 1층은 관리실과 화장실, 로비등이 있었고 2층은 전시실과 갱도 입구가 있었다. 3층은 입체영상실인데 사람이 적어 상영을 하지 않는지 입구가 막혀 있었다. 오늘은 아무래도 평일인지라 방문객은 거의 없는듯 했다. 결국 한바퀴 천천히 둘러보고 떠나기 전까지 아무도 찾지 않았다.

 

 

수갱 엘리베이터 시설. 우리가 갈 수 있는 곳은 여기까지다.

앞서 말했듯 이 현장학습관은 실제 탄광사무소를 이용해 만들었는데 2층은 복원까지 해놓아 마치 과거 모습 그대로를 보는 것 같았다. 탈의실부터 샤워시설, 장화세척실 까지 실제 광부들이 사용했던것과 똑 같이 복원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잊지 못할 체험은 바로 수갱시설이었다. 

 

 

시공된 갱도는 그 형태에 따라 수평갱(水平坑), 사갱(斜坑), 수갱(竪坑)으로 구분된다. 글자 그대로 수평으로 뚫고 들어갔느냐 비스듬하게 경사지게 뚫고 들어갔느냐 아니면 수직으로 들어갔느냐의 차이인데 이곳은 함태'수갱'인 것이다.

 

또 하나 재미있는 용어는 입갱과 퇴갱이었다. 갱도를 들어간다는 말과 갱도에서 나온다는 말이었는데 생소한 단어라 그런지 어감이 재미있었다. 요즘 온라인 상에서 말하는 입갤, 퇴갤도 생각나면서.

 

우리는 반팔옷을 입고 '입갱'했는데 불을 켜 주던 아저씨가 수갱으로 들어가면 추울꺼라며 긴 옷을 준비하는게 나을 거라고 말씀하셨다. 차로 돌아가기는 다소 멀어 그냥 들어갔는데 계단을 내려가자마자 그의 말이 농담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갱도 내부가 엄청 시원해 한기가 들 정도였기 때문이다. 밖은 30도가 넘는 무더운 날씨에도 이곳은 10도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과거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는 국가기간산업의 원동력이 되었지만 현재는 사양 산업이 된 석탄. 이후 태백을 통과해 정선으로 올라가는 동안 나타난 마을의 풍경은 마치 석탄의 역사와 함께 몰락한듯 서글펐다. 산 속에 자리잡은 낡은 아파트와 집들이 주인을 잃은 채 철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있었던 것이다. 1980년대에 태어난 나는-그리고 푸딩은 무려 1990년대에 태어났다- 아무것도 없는 이런 산 속에 아파트가 건설될 정도였다는 사실로 호황기를 짐작할 뿐이다. 그러나 과거 화려했던 기억은 이제 흉뮬이 되어 남아있다.

 

사북을 지나다 보니 화려한 호텔과 모텔들이 줄지어 있었고, 산꼭대기엔 강원랜드가 왕족의 성 마냥 위엄을 뽐내며 자리잡고 있었다. 석탄이 사양사업이 된 이후 지역경제 발전을 위해 태어난 카지노와 관련 시설들이다. 이미 문을 걸어잠근 낡은 아파트와 화려한 신축 호텔들, 나는 어울리진않지만 그럼에도 함께 이해해야만 하는 이 이질적인 두 풍경을 그저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두 곳 모두에서 매우 묵직하지만 정작 속은 비어있는 어떤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참이 지난 뒤에야 그 기분의 정체를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지났던 태백 일대는 우리 증조할아버지와 할아버지들의 피와 땀 그리고 설움까지 베어 있는 지역이었지만, 정작 그 노력의 결과물은 그곳에 없었던 까닭이었다. 겉만 화려한 카지노는 그런 피와 땀의 과정이 결여된, 공허한 껍데기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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