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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전국일주 캠핑

[전국일주 13일차] ④ 야자수가 있는 절 대흥사

by 막둥씨 2013. 11. 5.

 

대흥사로 들어가는 울창한 숲과 천혜의 계곡은 여전히 전국에서 손꼽을만한 수려한 풍경이었다. 10년 전 당시 나와 친구들은 겨울의 추위도 잊은 채 숲을 가로지르는 오솔길을 걸었었다. ‘겨울인데도 이렇게 멋진데 봄이나 여름은 대체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덕분에 한겨울의 바람과 추위도 우리를 가로막지 못했다. 그러나 그렇게 거대한 규모의 숲과 넓은 계곡, 계곡을 가로지르는 나무로 만든 흔들다리를 모두 거쳤던 여행길의 묘미는 이제 학창시절의 기억으로만 남아있다. 오늘은 차를 타고 이 아름다운 계곡을 지난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오늘은 10년 전 두 발로 걸어 이 길을 만끽했던 나와 지금 차를 타고 도로를 달려 계곡을 관통하는 나 사이의 간극이 가장 큰 변화였다. '결국 변하는 것은 나 자신인가?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사이의 괴리를 대체 어찌할 것인가?' 나이가 들수록 게을러지는 것인지 아니면 호주머니에 돈이 생긴 탓인지 분간은 쉬이 되지 않았다. 다시 아이의 눈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진 것이 많을 수록 여행자는 자연과 사람에서 멀어지는듯 했다.

 

이렇게 자괴감에 빠져있던 것도 찰나, 차로 달리는 계곡과 숲도 탄성을 자아내기엔 충분했다. 하늘을 덮으며 우거진 숲길은 전형적인 ‘윈도우 운영체제’ 배경화면 이미지 같이 아름다웠다. 사진으로는 많이 본 아름다운 풍경이지만 정작 실제로는 가본적이 없는 그런 느낌이랄까. 우리는 그림속을 달려 대흥사로 향했다.

 

웅장한 숲과 나무터널을 가로질러 도착한 대흥사는 절 초입 숲의 규모만큼이나 굉장히 큰 절이었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여타 절의 경우 어느 정도 건물의 배치라든지 동선 따위가 비슷해 쉽게 대웅보전을 찾을 수가 있는데, 대흥사는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건물의 수도 많을 뿐만 아니라 하천을 사이에 두고 여기저기 배치되어 있어 도무지 어디로 걸음을 옮겨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해탈문을 지나 범종각이 있는 드넓은 터에 섰으나, 그런 구조 탓인지 나는 이곳에 방문한 기억이 전혀 없었다. 자유로운 건물배치가 일으킨 낯선 기억이었다.

 

나의 기억은 대웅전을 보며 다시 살아났다. 대웅전 자체가 아니라 대웅전 앞에 심긴 나무와 절 분위기가 부조화를 이루는 기억 덕분이었다. 이미 영랑생가 앞 주차장 등 남도를 여행하며 몇 번인가 본 적이 있던 바로 그것, 야자수다. 10년 전 친구들과 대흥사 대웅전을 찾았을 무렵, 우리는 이 황당한 풍경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절 앞마당에 야자수라니! 이처럼 이질적인 풍경이 또 있을까? 정확히 말하면 이질적이라기 보단 단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풍경이었다. 남도 여행을 하다 보면 이렇게 절을 비롯한 유적 외에도 가정집 마당 등에 야자수가 심겨있는 경우가 왕왕 있었는데, 경상도 출신인 나로서는 10년 전 상상도 못 한 풍경이었다. 그리고 그 충격은 이곳 대흥사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언제부터 우리나라 남도지방에 이렇게 야자수가 심긴 걸까? 자료가 쉬이 찾아지진 않았기에 훗날 작심하고 찾아보기로 했다.

 

 

우리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1권에 나오는 돌사자와 국화무늬 창살 등을 세심히 눈여겨보았다. 돌사자 보다 천불전의 꽃 창살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채색까지 되어 있는 국화무늬였지만 지나치게 화려하지도 않았고 분위기와 잘 어울렸다. 그리고 추사의 무량수각 현판 글씨와 원교 이광사의 대웅보전 현판도 보았다. 제주도로 귀양가던 추사는 이곳 대흥사에 들렀다가 원교 이광사의 대웅보전 글씨를 촌스럽다고 타박하며 떼어내고 자신의 글씨를 달도록 했는데, 8년 뒤 다시 돌아오며 들렀을 때는 자신이 잘못 보았으니 다시 원교의 글씨로 현판을 달라고 한 이야기는 이미 유명하다.

 

초의선사가 기거했던 일지암 답사는 포기했다. 대흥사는 절의 홈페이지 문구가 “호국과 차의 성지”일 정도로 차의 역사를 전면에 내세운다. 그러나 앞서 다산과 교류했던 초의선사가 기거했던 일지암은 너무 멀었다. 대웅전에서도 가파른 산길을 700미터나 더 가야 한다니 더 고민할 여지가 없었다. 게다가 날씨도 흐렸고 날도 저물고 있었다. 언젠가 차와 차의 역사에 대한 지식을 조금 더 쌓고 나서 다시 방문해볼 요량이다. 굳이 많은 것을 한꺼번에 다 볼 필요는 없지 않은가? - 라고 말하지만, 당시는 육체적으로 너무나 힘들었다고 고백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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