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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일상

시네마 정동

by 막둥씨 2010. 10. 23.
3편의 영화를 묶어 자정무렵부터 장장 6시간동안 심야영화를 상영해주던 시네마 정동이 이달 24일을 마지막으로 문을 닫는다. 사실 문을 닫는다는 기사로 처음 접한 곳이라 한 번 도 가본적이 없다. 하지만 항상 없어진다는 것은 슬픔을 동반한다. 없어지기 전에 한 번 가 봐야지 하고 벼르고 있었는데 진짜 가보기만 하고 정작 영화는 보지 못했다. 오늘이 심야 상영 마지막 날이라는데 여건이 여의치 않다. 영화를 못보니 맥주라도 마셔야 겠다.

맥주를 홀짝이며 토이스토리3를 보았다.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영화관 따위에 마음쓰고 싶지 않아 기분을 풀려고 본 건데 오히려 더 슬퍼져 버렸다. 생활소품 브랜드 이케아(IKEA)가 광고에서 강조했듯 사물이 무슨 마음이 있겠냐 만은, 사실 그걸 바라보는 인간은 마음이 있으며 또 의미를 부여한다. 게다가 익숙해 지기 마련이다. 혹은, 다시는 보지 못한다는 사실은 또 얼마나 슬픈가.

길가의 가로수에는 가을이 오고 있다. 단풍은 아름답다던데 곧 떨어지겠지 생각하는 나는 슬프기만 하다.

이쯤에서 무언가 가져와야 될 것 같아 요즘 읽고 있는 책을 뒤져 본다.

J형. 저는 문학이 상처의 자폐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는 상처로 빚어진 사람을 앞에 두고, 자신의 통증을 고양시키거나 오히려 위무 받는 경험에 익숙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위무와 고양된 상처는 삶 속에서 끈질기게, 돌발적으로, 게다가 뻔뻔하게 반복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저는 세계는 고통스러운 곳이라는, 이제는 거의 상투어가 되어버린 탄식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탄식 속에 주저앉기보다는 침묵 속에서 주먹을 쥐며 일어서는 일이 아름다운 실존이라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사이'와 '거리'!
(중략)
J형. 우리는 모두 상처로 빚어진 사람들입니다. 그때 당신과 내가 심각한 전율 속에서 시를 읽는 일은 상처가 빚어낸 살믕ㄹ 숨금의 언어로 눈부시게 단련시키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눈부신 언어의 연금술을 사랑하기보다는, 피로한 다리를 쉬갈 수 있는 생의 의자를 저는 존중합니다. 그러므로 저는 당신이 걸어야 할 에움길과 몸시질을 그저 넉넉하게 바라보고만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 이 삶이 정당하지 않겠습니까. 극에 달한 독이 약이 되듯이, 당신의 고뇌가 더욱 향기로워지기를 기원하겠습니다.

아, 벌써 가을이 목젖까지 차오른 것 같군요.

<마음이 소금밭인데 오랜만에 도서관에 갔다> 이명원

그러고 보니 기울임꼴이 이탤릭(Italic)인게 피사의 사탑 때문이란 말도 있던데. 믿거나 말거나 참 재치있는 생각이다.
24일을 수요일이라 표시해 놓은 저 인간다운 모습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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