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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기고

"공공기관이 먼저 수돗물 먹어야"

by 막둥씨 2015. 8. 22.

ⓒMyrtle Beach TheDigitel

1908년 서울 뚝도 정수장 건설로 공급이 시작된 우리나라의 수돗물은 현재 수질 순위 세계 8위로 프랑스, 미국, 독일 등 선진국보다 뛰어나다. 하지만 국내 수돗물의 직접 음용률은 불과 5.4퍼센트로 일본 47퍼센트, 미국 56퍼센트, 영국 70퍼센트 등 다른 선진 국가에 비해 턱없이 낮다. 수돗물을 생산, 공급하고 있는 정부와 지자체들은 국민들에게 수돗물을 믿고 마시라고 재촉한다. 하지만 정작 내부적으론 어떨까?

 

지난 7월 14일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조례안 하나가 경기도의회에 상정됐다. 경기도 공공기관 등에서 일회용 병입수 제공을 금지하고 수돗물 음수대를 설치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경기도 일회용 병입수 제공 금지 및 수돗물 음용 촉진 조례안’이다. 조례안을 대표 발의한 양근서 의원을 만나봤다.

 

 

공공기관의 이율배반 ‘병입수’

 

양근서 경기도의회 의원은 공적인 회의나 행사에서 공공기관이 제공하는 음료가 대부분 일회용 병입수라는 사실에서 크게 두 가지 문제를 느꼈다고 한다. 먼저 병입수를 마시면 남는 플라스틱병에 관한 문제다. “자원순환과가 별도로 존재하는데 일회용품을 쓰지 말자는 시책을 쓰고 있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공공기관이 일회용품에 대한 부담감 없이 자유롭게 사용하고 있다. 이는 모순이다.” 다른 문제는 그런 플라스틱병에 든 물 자체다. “정부나 지자체는 엄청난 공공예산을 들여 깨끗한 수돗물을 개발, 관리, 공급하고 있다. 국민들에게는 수돗물이 깨끗하고 안전하니 마시라고 홍보예산까지 써 가며 이야기한다. 그런데 정작 공공기관에선 본인들도 먹지 않고 있다.” 양 의원은 이 역시 모순이자 이율배반이라 지적했다. 그 사이 국민의 갈증을 채워준 건 시판되는 생수였다. 2012년 기준 국내 먹는 샘물 판매량은 무려 325만2989톤, 500밀리미터 생수병으로 환산하면 65억 병에 달하며 국민 1인당 연간 130병을 소비한 셈이다.

 

양근서 의원은 조례를 통해 이런 모순을 없애고 공공기관이 수돗물 음용에 앞장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외국에서는 이미 병입수를 제한하고 수돗물을 장려하는 일이 보편적인 정책으로 자리 잡고 있었고, 활발하게 입법 활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사전조사를 통해 알게 됐다. 그는 외국 사례들을 참조하여 조례안을 만들었고 지난 6월 입법 예고했다. 

 

그가 대표 발의한 조례안은 입법 예고 이후 논란으로 한 차례 홍역을 치렀다. 가장 억울했던 부분은 공공기관 행사 등에서 병입수를 제공할 경우 해당 ‘기관’에 최대 100만 원 이내의 벌금을 부과한다는 조례안 내용을 언론들이 마치 공공기관에서 병입수를 먹은 일반 시민들에게 과태료를 부과하는 것으로 잘못 보도한 부분이다. 양 의원은 “개인적으로 가지고 다니는 걸 어떻게 막겠는가. 다만 공공기관에서 주최하는 행사 등 공공기관이 공공예산을 가지고 일회용 병입수를 사서 제공하지 말라는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부결된 조례안

 

지난 7월 14일 경기도의회에 상정된 조례안은 재석의원 98명 중 찬성 37명, 반대 50명, 기권 11명으로 부결처리 됐다. 반대하는 의원들의 논지는 조례안의 입법 설계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으로, 달성하고자 하는 정책목표가 효과를 내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이었다. “왜 효과가 없다고 이야기 하나. 미국의 직접 음용률은 56퍼센트로 굉장히 높아 우리나라의 10배 수준이다. 어떻게 그런 높은 음용률을 달성하게 됐겠나. 바로 이러한 정책 수단 즉, 일회용 페트병 생수 사용을 금지하고 음수대를 설치하는 등 수돗물 이용 촉진 조례를 통한 상승작용으로 수돗물이 깨끗하다는 인식이 심어졌기 때문이 아닌가.” 양 의원이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물론 조례안이 넘어야 할 산도 있다. 가장 큰 걸림돌은 기관에 부과하는 과태료 부분인데, 과태료를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법리적인 해석이 갈려 현재 법제처에 유권해석을 의뢰해 놓은 상태다. 8월 초쯤 결과가 나올 예정인데, 명백하게 법리적으로 충돌하지 않는 이상 원안대로 추진할 예정이다. “공공기관에 100만 원의 과태료가 무슨 부담이 되겠나. 단순히 공고 수준이 아니라 구속력을 강화하는 최소한의 상징적 장치로서 의미가 있다고 본다.” 양근서 의원은 만약 법제처가 불가능하다고 해석을 내린다면 과태료 부분을 삭제하고 대신 벌칙규정 등을 통해 대체할 예정이다. 

 

 

선진적 시도 통과돼야

 

조례안은 9월 재상정될 계획이다. 이번에는 긍정적인 결과가 자못 기대된다. 집행부도 호의적일뿐더러 지난 7월 조례안에 반대하거나 기권한 의원들도 취지에는 공감한다는 뜻을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도가 첫 물꼬를 트면 다른 지자체도 동참할 수 있기에 9월의 결과에 세간의 이목이 주목되고 있다. 과연 공공기관은 모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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