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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일상

강제 기상

by 막둥씨 2012. 6. 16.

오늘 놀라운 일이 있었다. 어제밤 평소보다 빨리 잠자리에 든 탓도 있고 또 아침 일찍 엄마가 나가셔야 되는 날이라 집안이 소란스럽기도 한 탓에 나는 다소 일찍 잠에서 깼다. 어찌되었건 새벽 5시는 내가 일어나기에 너무 이른 시간이었고 나는 다시 잠을 청했다.

그 놀라운 일은 6시 30분쯤 일어났다. 집 밖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잠결에 들린 것이다. 시골에서는 집안 어른을 부를때 자식의 이름을 대신 부르곤 한다. 누구의 어머니, 누구의 아버지도 아니고 그냥 자식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 나는 으레 부모님을 찾는 목소리로 생각했고 당시 집에는 아무도 없었으므로 이를 확인한 목소리의 주인공이 다시 돌아갈 것이라 생각했다. 게다가 나는 반쯤 잠에 취해 있어서 대답할 정신도 없었다.

그런데! 이 목소리의 주인공은 돌아가지 않고 현관문을 두 개나 열고 거실을 가로질러 내 방문까지 열어젖히고 들어와 나를 깨웠다. 옆집 - 이라고는 하지만 100미터 이상 떨어져 있다 - 아저씨였다. 아무런 미안한 기색이나 거리낌 없이 아직까지 자냐고 핀잔을 주시며 아저씨는, 현관문을 두 개나 열고 거실을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내 방문도 열어젖히고 자고 있던 나의 침대맡까지 누구의 허락이나 어떠한 제제도 없이 들어오신 이 아저씨는, 내가 상상도 못한 매우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 주셨다. 세상에 나는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정신이 번쩍들며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글쎄...!! 아저씨네 집에 TV가 안나온다는 것이었다.

나는 아저씨에게 주거침입이 불법임을 알리고 침실이라는 사생활적 공간에 대한 존중을 이야기하는 대신 아저씨 집으로 TV를 고쳐주러 갔다. 이틀전에 디지털컨버터를 설치했는데 - 지상파 아날로그 방송은 올해인 2012년에 종료되므로 아날로그 티비는 디지털컨버터를 설치해야 한다 - 오늘 아침에 보니 어제까지 잘 나오던 TV가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채널검색도 해보고 이것저것 설정을 바꿔봤지만 결국 문제는 수신감도가 약한것으로 안테나의 위치나 연결이 불안하기 때문인 것 같았다. 내가 할 수 있는게 아니라 설치해주신 기사분을 부르는 게 빠를 것 같다고 아저씨께 말씀 드렸다.

아침 7시가 덜 된 시각. 설치 기사에게 지금 당장 전화해 보라는 아저씨께 지금보다 9시쯤이 되면 연락드리는게 나을것이라 조언을 드렸고 결국 그렇게 했다. 그리고 새삼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도시의 시간과 시골의 시간은 다르다는 사실을. 시골은 도시보다 밤이 일찍 찾아오고 아침이 일찍 시작된다. 아마 동네에서 6시가 넘도록 자고 있는 것은 나 뿐이리라. 하지만 덕분에 아저씨네로 가는 길목에서 아름다운 풍경(http://adventure.or.kr/877)도 보았고, 다른 날 보다 좀 더 긴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이제 다음주 화요일에 방문하신다는 기사분이 TV를 원 상태로 돌려놓으면 오늘 하루의 해프닝은 종지부를 찍을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는 모든 가정에 TV가 잘 나와서, 한 청년이 불안한 마음 없이 편히 잘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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