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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채우는 여행

Australia :: 9개월 호주여행 일기

by 막둥씨 2010. 2. 10.
20090520 - 시작되지 않은 여행

정오 무렵. 시티 라이브러리로 가는 길.
태풍을 방불케 하는 비바람이 브리즈번 전역을 휘젓고 있었다.
점심식사를 위해 나온 회사원들은 거리에서 연신 비명을 질러대며 비바람을 피하고 있었고 빌딩 경비들은 건물 안으로 들어오는 비를 막기 위해 자동문을 통제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 틈에 섞여 도서관 건물 안으로 들어섰고 NBA를 시청중인 Simon형을 만났다. 

어느덧 3주가 흘렀다.
몇 장의 사진을 찍고 거리에서 노래도 불렀으며 몇몇의 인연도 만났다. 하지만 무엇때문일까. 아직 아무것도 채워지지 않고 있었다. 새로운 것에의 갈망도 텅 빈 가슴도 심지어는 통장의 잔고도. 
나는 무엇을 위해 시속 900킬로의 속도로 10시간 동안이나 날아온 것인가. 

해답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
바로 이곳이 도시라는 것. 도시체험은 스무 살의 서울로 족했던 것이다.

3주가 흘렀다. 하지만 아직 여행은 시작되지 않았다.



20090522

보석을 하늘에 박아 놓은듯한 밤하늘이라는 표현은 진부하기 짝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나름 꽤나 시골인 나의 고향 밤하늘의 별들도 점점 빛을 잃어 가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러했다. 

그제 저녁 8시에 출발해 장장 24시간에 걸친 1200km의 이동 중 본 이곳의 밤하늘은 정말 ‘보석을 박아놓은’ 그 자체였다. 게다가 선연한 은하수가 동에서 서로 가로질렀고 드넓은 대지의 암흑 저편에서는 번갯불이 일정한 간격으로 아득한 미명을 전해왔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이 지구별의 한가운데 서 있는 나는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 것인가. 바다 속의 소금인형이 되어 나무와 바람과 대지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을까. 어느 것 하나 확실하진 않았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세상에 확실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 나는 자신에게 다시 되물었다. 그리고 그는 한참 후 한 가지는 확실하노라며 이렇게 대답했다. 

“지금, 여행이, 시작되었다.”

사진 / 휴게소에서 바라본, 나름 고속도로라 불러야 할 호주의 2차선 도로 



20090527

해변의 바위에 홀로앉아 바다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생각했다. 아니, 생각이 들었다. 만물과 하나가 되는 일, 세상 속에 자신을 녹이는 일 중 가장 힘든 부분이 바로 사람이라는. 최신 물리학도 그리고 뇌과학 분야도 아직 제대로 개척하지 못한 미지의 것인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사람은 어렵다. 

오늘 한 행자를 만났다. 그는 자신을 드러내느라 바빴다. 하지만 얼마 후 나 역시도 그에게 열심히 스스로를 드러내고 있었다. 늦은 밤잠에 들 기전 문득 이 사실을 깨닫고 후회했다. 

정제되지 않은 말은 양날의 검과 같다. 좋은 말이 많이 나올 수도 있지만 그만큼 실수도 많이 하게 된다. 침묵이 금이라고는 하지만 그 경우의 언변의 녹슴을 설파하던 그는 오히려 반대의 가르침을 내게 일으켜 준 것이다. 

세 사람이 길을 가고 있다면 그 중 반드시 스승이 있다고 했다. 남녀노소와 상관없이 말이다. 나의 경우 많은 깨달음을 연장자로부터 얻었다. 하지만 대부분 좋은 본보기가 아닌 ‘나는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하는 타산지석이었다. 보통 나이가 들수록 가진 것이 많아져 보수적이 되고 지나친 사회화로 인해 합리적인 사고가 결여되며 연장자라는 그 사실만으로 -특히 우리나라에서- 권위주의적이 된다. 

하지만 나 또한 나이를 먹고 있다. 스스로를 경계해야 한다. 


20090606

아침. 문득 홀로 잠에서 깨어나 엄습해오는 허무와 외로움에 몸부림 쳤다. 내가 왜 이곳에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테라스에서 쏟아지는 햇살을 뒤로한 채 침낭 속에서 뜬눈으로 공허한 아침을 맞이했다. 이 큰 집안 모든 것이 정지해 있었고 다만 먼지만이 햇살이 투과돼 공기 중에 떠다녔다. 낯선 땅 동료 여행자들보다 먼저 눈뜨는 아침은 종종 이런 것도 같았다. 

어젯밤은 취기와 피곤함에 잠이 들어 버렸다. 어쩌면 어젯밤 잠들기 직전의 감정이 남아 아침까지 지속된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soulmate는 존재하는 것일까? 그것이 어떤 완벽함을 뜻하는 것이라면 어리석기 그지없는 질문이라는 것을 나 또한 안다. 하지만 60억이 넘는 인구 중 가장 그것에 가까운 이는 존재할 것이다.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며 만나는 이는 몇 명이나 될까? 보통 짝을 찾는 나이인 서른 즈음에 만나본 사람들은 60억중에 몇 명이나 될까? 

당신이 인연이라고 생각하는 그 사람은 60억중의 한명이 아니라 -만약 이제껏 살며 10만 명의 의미 있는 사람(말을 섞든 눈여겨보든)을 만났다고 한다면- 10만 명 중의 한명일 것이며 이는 전체 지구 인구 중의 0.002% 밖에 되지 않는다. 0.002% !! 

고작 0.002% 의 사람들만 만나고 선택을 해야 한다는 건 슬픈 일이다. 매우 슬픈 일이다. 

인류에게 지구는 좁을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그렇지 않다. 



20090607

타인에게 겸손함의 미덕을 설파하던 한 여행자는 그런 그 자신의 모습이 자신의 언행과 모순됨을 발견했다. 결국 떠벌리기 좋아했고 자신의 의견을 타인에게 관철시키는데 몰두했었다. 그 여행자는 단지 타인이 겸손하기만을 바래온 것이다. 스스로는 그러하지 못한 채. 



20090608

한때 자신만의 색을 가지지 못해 고민했던 적이 있었다. 개성 있고 색깔이 짙은 친구들이 한없이 부러웠었다. 그렇게 치기어린 날들이 지나고 나는 스스로를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그 즈음의 나는 투명함이 되고 싶었다. 얼핏 보면 색이 없어 맹맹해 보이지만 사실은 모든 색을 투과시켜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그런. 

어제의 그 어리석은 여행자인 나 자신에게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주고 싶다. 물들지 않아 모든 것을 나타낼 수 있는, 그러면서 자신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 그 투명함의 미덕을. 



20090619

한동안 사진을 찍지 못했다. 십여 일전 해질 무렵. 잠간의 낚시를 즐기러 해변으로 나갔었다. 삼사십 분 남짓이었던가. 샌드플라이의 공격에 결국 집으로 돌아왔고 팔과 다리는 온통 울퉁불퉁 물린 흔적들에 부어올랐다. 그때 생긴 공포는 나를 여태껏 집안에 가두어 두었다. 

하지만 그때 본 풍경은 잊지 못한다. 파스텔 톤의 하늘과 새하얗고 동그란 달. 수평선에는 산맥 같아 보이는 섬의 실루엣. 그 모든 것들의 아래에는 하얀 모래사장이 펼쳐졌다. 그리고 그 모래사장 한가운데 한 여인이 있었다. 녹색 긴 치마에 호일펌을 한 듯한 긴 머리. 나는 그 히피풍의 여인이 누구인지 몰랐다. 다만 얼굴만 몇 번 마주했을 뿐이다. 

하지만 나는 그 여인이 마음에 들었다. 그녀의 그 자유로움과 세상을 느끼는 방식과 심지어 그날의 그 멋진 풍경까지 나에게 큰 인상을 주었다. 

사실 그때의 기억이 무슨 의미였냐고 묻는다면 나는 대답할 수 없다. 사실 그녀를 포함해 풍경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것은 일종의 꿈과 같았다. 

사진 / 며칠 뒤 그때 그 풍경을 기억하며 다시 해변을 찾았지만 그녀도 그리고 그 환상적인 풍경도 다시는 찾을 수 없었다. 




20090622

단순히 사람을 사귀는 방법에 서툰 것인지도 모른다. 또는 남들보다 외로움을 덜 느끼는 그런 차가운 인간일 수도 있다. 초라한 사반세기 인생의 끝자락에서 나는 생각했다. 
(어쩌면 버팀목이 되어주는 따뜻한 가정이 있어 이미 사랑을 듬뿍 받고 있기 때문일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20090627

모두가 잠들어 있는 새벽 2시반경에 일어난 일이다. 나 또한 잠에 빠져 꿈을 꾸고 있었다. 휘리릭 툭 하는 느낌과 함께 몸이 무거움을 느끼며 갑자기 깨어났다. 사건인즉 옆자리에서 술에 곯아 떨어져 자던 행자가 누운 채 몸을 데굴데굴 굴려 내 몸에 바짝 달라붙은 것이다. 깨어나는 사이 팔까지 내 몸에 얹고 있었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벌떡 일어났고 그 사이 그는 계속 굴러 결국 매트릭스 밖 바닥으로 떨어졌다. 나는 그를 깨워 다시 그의 자리로 돌려보냈지만 한번 놀라고 나니 또 그럴 것 같아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아침녘 일어나 ‘나는 성적 소수자를 존중하지만 어젯밤의 기습은 좀 아닌 것 같다’며 반농으로 그를 추궁했다. 

대략 진술을 종합해 보니 술기운에 외로움이 겹쳐져 사람이 그리웠던 모양이었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살아있는 것들은 모두 홀로 살아가기 힘든가 보다. 그것이 자연의 섭리이든 혹은 다른 무엇이든. 나 또한 살아있으니 피할 수 없을지 모른다. 




20090703

“체념이란 확인된 절망일 뿐이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 

동료 행자가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며 이 글귀를 전해왔다. 상황이란 그가 사랑하는 여자가 이 글귀를 전해 주었다는 것이다. 아마 그 여성은 그의 마음을 눈치 채고 행동한 것일 테다. 

사실 글이라는 것은 그것이 짧고 모호해 질 때마다 더 많은 의미를 가지게 된다. 그것을 함축이라 부르든 자간의 의미라 부르든. 

여태껏 나는 직접적이고 명료하며 군더더기 없는 말을 선호해 왔다. 하지만 동시에 신비주의적이고 다소 모호한 (남들이 보기에) 글도 썼었던 듯하다. 아마 대화는 간단명료하게 하고 혼자만을 혹은 특정 소수를 위한 글은 나나 그들만이 알아보게 썼었던 것 같다. 

위의 그녀도 그러했을 것이다. 상황을 고려해 해석을 하면 할수록 나는 알 수 없는 수렁에 빠진 것 같았다. 대로는 해석이 정반대의 의미를 지니기도 했다. 아마 어쩌면 그것이 의도가 아닐까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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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장 잔고가 0이 되었다. 계획했던 최저 방어선이 무너져 가는 것을 느꼈다. 같은 배를 탄 여행자들이 절망으로 빠져드는 것을 보며 하지만 아직도 태연하고 느긋했다. 기댈 곳을 생각해 두었고 낙천적 -혹은 근거 없는 자신감- 이기 때문이었다. 

사실 지나친 근심은 해롭다. 적당한 근심에 오히려 미래를 설계하고 현재를 즐기는 것이 올바른 방향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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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에게 있어 가장 슬픈 일중 하나는 함께 했던 여행자들을, 정들었던 그들을 떠나보내는 일이다. 같이 살던 몇 명의 식구들이 내일 떠난다는 갑작스런 말에 알 수 없는 우울함이 밀려들었다. 

회자정리라고 했던가. 25년 인생을 살면서 얻은 생각은 out of sight, out of mind에 헤어지면 그만이 되어버린다는 진리였다. 아마 그들도, 심지어는 지금 한 배를 타고 있는 이들도 나중에 이 여행이 끝나면 잊혀 갈 것이었다. 특히나 나는 더욱 그러한 것 같았다.

사진 / 많은 동료 여행자들을 만난 토마토 농장의 파노라마. 나는 이곳에 오래 있었기에 수많은 이들을 떠나보내야 햇다. 




20090707

“거짓말을 하지 말라. 그것은 부정한 일이다. 그렇다고 모두 다 말하지는 말라. 그것은 불필요한 일이다.” 

거짓말을 하지는 않지만 불필요한 말을 많이 하는 것 같아 위의 말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20090715

인생을 흘러가는 대로 살아온 한 남자가 있다. 결정론자까지는 아니지만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인생의 길과 방향은 -혹은 체험할 수 있는- 하나 밖에 없으므로 어쩌면 별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적은 있지만. 내가 무엇을 선택하든, 평소의 나 같지 않은 의외의 선택을 결정론을 벗어나기 위해 해 보더라도 그것 또한 결정론의 한 부분이라 생각하면 한없이 나란 존재가 무언가로 빠져 들어가는 느낌이 들곤 한다. 

앞으로의 길을 고심하는 여행자를 보며 상념에 빠져들어 본다. 온전한 자신의 의지로의 인생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의구심도 든다. 흐르듯 오게 된 먼 이국땅에서 생각해 본다. 




20090716

무엇인가에 마음을 준다는 것은 온전히 자신이 행하는 일이다. 대상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리고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파장 또한 크다. 깊으면 깊을수록 실망감, 질투심, 배신감등이 깊어진다. 하지만 온전히 스스로가 자초한 일. 사랑에 크게 데여본 사람이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한 것처럼 그러한 것이다. 

그것이 사소한 물건 하나라도 애정을 가지게 되면 없어 졌을 때 그 파장이 큰 것이다. 그리고 그 파장은 대부분 고통을 수반한다. 

그것을 피하는 길은 마음을 주지 않는 것뿐인가……. 




20090719

“내가 죽으면 슬퍼하지 말고 축제를 열라” 

문득 예전에 적어두었던 유언의 한 구절이 생각났다. 내가 무엇 때문에 죽어서가지 그들에게 슬픔을 요구해야 할까? 이미 그들은 충분히 슬프지 않을까? 그렇다면 차라리 그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놀고 떠드는 문화가 정착된 이 마당에 형식적인 슬픔은 쓸모없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무릇 문화적 차이라는 것이 그러하다. 문화 상대주의는 곧 그것이 형식을 뿐이라는 것을 듯하다. 전체의 문화적 단결을 흩뜨릴 필요는 없지만 맹목적으로 동조해야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 




20090723

“사랑해라, 그렇지 않으면 지금가지 잃어온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잃게 될 것이다.” -이병률 산문집 <끌림> 중- 
결혼까지 했었지만 한 번도 사랑해 본 적이 없었던 사내에 관한 이야기를 쓰던, 사실 한 번도 사랑해본 적이 없을지도 모르는 소년에게 큰 자극을 안겨주는 글귀였다.

사진 / 해질녘까지 낚시를 하고 돌아오는 길



20090726

새벽녘 깨어 홀로 앉아 글을 끄적이려다 날짜가 정확하지 않았다. 기억을 되돌려 셈을 해보고 또 생각해보고 결국 시게로 확인해 볼까 하다 문득 깨달았다. ‘하루쯤 틀린들 어쩌랴. 우주의 시간에서는 한 낱 부질없는 찰나에 불과한 것이거늘’ 이내 평안한 마음으로 돌아왔고 대략적인 날짜의 기록을 시작으로 일필휘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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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우를 범했다. 누군가 나를 공격한다고 해서 나도 그를 공격하면 그가 자신이 한 일을 깨닫고 그만 둘 것이란 착각을 했다. 결국 끝이 나지 않는 소모전에 돌입하고 만 것이다. 사실 누가 먼저 시작했느냐는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끝없는 소모전으로 가다 보면 결국 그것은 중요하지 않게 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누군가 나를 계속 해하더라도 참고 인내해야만 하는 것인가? 다른 이에게 안 좋은 말을 흘리더라도 웃음으로 털어 버려야 하는 것인가? 웃음과 무저항은 긍정을 의미하는 경우라도 말인가? 그리고 그 누군가를 계속 그런 못난 모습으로 내버려 두는 것은 오히려 무책임하고 개인주의 적인 생각이 아닐까? 큰 수레(대승)와 작은 수레(소승)의 문제는 사실 비단 나만의 것은 아닐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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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왜 사는가? -죽지 못해 산다-그럼 왜 살려고 발버둥 치나? -살 수 있으니까. 죽으려고 발버둥 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옛 대화를 떠올려 보며……. 



20090729

백일몽에서 깨어났다. 가슴속 불씨는 의지와 상관없이 생겨나지만 그것을 키우는 것은 나 자신이었고 결국 꿈에까지 이어졌다. 

덕분에 문득 다시금 생각해 본다. 무엇이 문제일까? 궁하지 않기 때문인가? 방법도 잊어버렸다. 아니, 처음부터 몰랐던 것 같다. 나는 지나치게 득과 실을 따지고 효율적인 것만을 따지는 건지도 모른다. 사람은, 사람의 마음은 그런 것으로 따질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니까. 

사실 방법과 노력도 모두 상대방의 불씨를 키우는 과정의 하나일 것이다. 처음부터 큰 불을 바라는 건 욕심일 것도 같다. 하지만 어딘가에는 있을 것이고 나는 그 반쪽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계속 이렇게 스스로가 만든, 커진 불씨에 가슴이 타는 고통을 느끼며……. 그렇게 말이다. 

횡설수설했다. 어쨌든 나 자신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바뀌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그러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가슴 아픈 일이다. 가슴 아플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20090809

아침햇살에 떨어지는 테이블 위 일렁이는 나무 그림자가 잔잔했던 내 마음에도 물결을 일으킨다. 하지만 나는 왜 이 시각 이 시점에 이 장소에 존재하는가 하는 의문만 들면 무엇 하나 해답이 없다. 마치 내가 보고 있는 이 일렁임이 혹은 나무 그 자체도 허상인 것처럼. 




20090813

어제 차가 도랑에 빠졌었다. 뒷바퀴가 1m가량 뜰 정도로 제대로 박혀버린 것이다. 지나가던 오지인들이 차를 세워 도움이 필요하냐고 물어봐 주었다. 하지만 실질적 도움은 되지 못했고 한 여성 3인조는 사직을 찍고 동영상을 찍기에 바빴다. 결국 그들에게는 마음만 받고 마지막으로 등장해 도움이 되었던 pete아저씨 덕분에 차를 꺼낼 수 있었다. 영화에서나 보던 픽업SUV 앞에 장착된 와이어로 차를 끌어 올려 주었다. 그리고 그는 좋은 여행이 되라는 말과 함께 사라졌다. 그와 악수를 나누며 나는, 우리는 너무나 고마웠다. 훈훈한 감정이 이 낯선 땅에서 생기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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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반가운 이에게 전화가 왔다. 그리고 그녀는 나에게 용기와 희망을 북돋아 주었다. 그렇다. 나의 아름다운 빛을 알아주는 사람이 어딘가에는 있을 것이다. 
침울함에 빠져있던 나에게 가뭄의 단비 같은 전화였다.

 


20091010

일이 끝나고 차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가는 길. 같은 동료 여행자들이 차창 밖으로 손을 흔들어 주는 일은 정말 기분 좋은 것이었다. 얼굴만 아는 사이라도, 같은 곳에서 일을 하는 동료라는 이유하나로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채 손이 먼저 올라가 인사를 한다는 것. 정말 멋진 일이다. 그리고 서로 기분 좋은 일이다.

오늘 일을 끝마치고 내려 차창 밖으로 인사해 주는 친구들을 보며, 그리고 그 뒤에 오는 차를 타고 오는 동료여행자들이 걸어가고 있는 내게 반갑게 인사해주는 그 상황에서 나는 매우 행복했다. 이런 작은 행동에서도 사람은 크게 감명받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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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동료 여행자로부터 나의 농담을 이용한 비꼼에 대한 지적을 받았다. 웃음으로 넘겼지만 사실 나도 내가 그러함을 알고 있었다. 물론 농담이었지만 순도 100퍼센트 웃음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설령 그럴지언정 웃음이라는 것 자체가 보통 남이 자신보다 못한 것을 보며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하지 않는가. 여하튼 결론적으로 상대방을 기분 나쁘게 했다면 나에게 잘못이 있으리라.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오는 비꼼 혹은 상대방을 깎아 내리는 농담. 자제해야 하겠다. 무의식적이라는 말은 곧 적절한 사고가 결여되었다는 말과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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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곳 타지 생활을 가장 오래 함께 했던-총 6 개여월 중 5 개여월 남짓- 동료를 곧 떠나보내기에 간단한 술자리를 가졌다. 이런 저런 이야기 실없는 농담 그러나 즐거운 시간들이 지나고 우리는 마지막으로 서로에 대한 정듦과 좋은 친구였다는 말을 나눴다. 울고 웃고 힘들고. 많은 경험과 시간들을 공유했던 여행자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그 또한 자연스레 잊혀질 것을 생각하면 조금은 슬펐다. 또한 한국으로 돌아가 만나더라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을 것 같다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사람은, 더 나아가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은 아마도 얼마나 오래 혹은 어떤 상황에서 만났냐 하는 것 보다는 지금 현재 함께 있느냐가 역시 중요한 듯하다.

지금 누가 당신의 옆에 있는가?

사진 / 그들과 마지막날 저녁. 잠시 바닷가를 산책해 본다.

 

 
20091021

낯선 나라 낯선 땅에서 만난 제 2의 고향과도 같았던 지역을 떠나는 날. 사실 근래 살짝 지겨움을 느끼고 있던 터였다. 하던 일을 그만두고 떠나며 나는 해방감과 또다시 낯선곳으로 가는 두근거림만을 느낄줄 알았다. 하지만 가슴 한 구석엔 아쉬움 또한 남았다.

사진 / 떠나는 길. 흥분과 아쉬움이 공존한채.

 


20091023


새로운 경험들. 스카이 다이빙.

 


20091026






모기는 날개달린 천사다.

배드버그에 며칠째 시달리다 보니 누군가가 한 위의 말이 내 가슴을 파고들었다. 가렵기는 모기의 수 배는 되는 듯 하고 한번 물리기 시작하면 온 몸이 마치 전염병이나 앨러지에 걸린듯 부풀어 오른다.

오늘은 가려움과 부풀어 오름의 극치를 달리고 있다. 아무래도 침대를 벗어나 바닥에서 한번 자 봐야 할 듯하다. 절망적이다.  

사진 / 27일. 홀로 방문한 Kurranda. 기차는 산꼭대기를 달리다 문득 마을을 만난다.

 


20091130

여행이 끝나간다. 결국 종착지로 찾은 곳은 사람을 따르는 길의 끝이었다. 그저 살아간다는 것을 온전히 실천하고 있는 지금이다.

무더운 여름 기온. 집안에 앉아 있는 것 조차 힘들정도로 덥다. 온도계는 40도를 오르락거린다. 찌는 듯한 이 더위를 선사하던 태양이 기울어 아름다운 하늘을 연출할 때, 나는 나른한 기분을 느낀다.

사진 / 현재 지내고 있는 집의 뒷마당과 창고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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