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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기고

케이블카로 물든 나의 첫 설악산국립공원

by 막둥씨 2013. 10. 1.

지금이야 수학여행을 비행기 타고 외국도 간다지만, 사실 우리나라 수학여행의 메카는 단연 경주와 설악산이다. 경주는 대표적인 문화유산의 보고라 할 수 있겠고 설악산은 동해가 펼쳐지는 수려한 풍광과 암석지대를 보유한 으뜸 국립공원이니 이 둘은 그간 별 이견 없이 수학여행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장소가 되어왔다. 그런데 정작 나는 한 번도 설악산을 가본 적이 없다. 경주는 고향과 가까워 십수 번을 갔지만, 설악산은 멀기도 할뿐더러 기회가 없었던 탓이다.

그 사이 설악산에는 그림자가 드리웠다. 바로 케이블카 문제다. 이미 설악산국립공원에는 ‘설악케이블카’가 40년 넘게 수많은 논란 속에 운행중이다. 그런데도 설악산 자락에 있는 지자체 한 곳이 케이블카를 하나 더 짓겠다고 나섰다. 양양군 서면 오색리를 하부정류장으로 대청봉 지척까지 올라가는, 이름하야 ‘오색케이블카’다.


멸종위기 산양의 보금자리

“저기, 산양을 보고 싶은데요. 힘들면 산양 똥이라도…….” 생애 첫 설악산을 방문하기로 한 후 속초고성양양환경연합에 전화를 걸어 가장 먼저 물어본 것은 산양에 대해서였다. 설악산은 천연기념물 제217호이자 멸종위기 야생동물 1급 산양의 주요 서식지다. 나는 야생 산양이 보고 싶었다. 산양도 산양의 똥도 직접 보기는 쉽지 않다는 김안나 사무국장의 말에 적잖이 실망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산양이 그곳에 없는 건 아니다. 설악산국립공원은 국내 몇 안 되는 산양의 서식처 중 한 곳으로 약 200마리가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주요한 산양의 보금자리에 케이블카가 들어서려 한다. 산양의 보금자리가 파괴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사실 근본적으로는 신청 자체가 불가능해야 했다. 작년 6월 국립공원위원회는 양양군의 오색케이블카 사업 신청을 부결하며 “「자연공원 삭도 설치•운영 가이드라인」 및 「국립공원 삭도시범사업 검토기준」에 부합하는 사업계획을 다시 제시하는 경우 적정한 절차를 거쳐 내륙형 국립공원 삭도 시범사업 선정을 추진한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오색케이블카 설치계획은 결코 가이드라인에 부합할 수가 없다. 「자연공원 삭도 설치•운영 가이드라인」은 멸종위기종이나 천연기념물 등 법적 보호종의 주요 서식처·산란처 및 분포지에 케이블카 정류장이나 지주를 설치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산양이 케이블카 예정 노선을 따라 집단 서식하는 것으로 이미 조사됐기 때문이다. 9월 초입의 어느 날, 나는 이런 해결할 수 없는 모순을 가슴 한구석에 간직한 채 속초행 고속버스에 올랐다.

케이블카가 실어나른 과도한 탐방객으로 돌산이 되어버린 권금성 일대


탐방객 증가로 훼손도 심해져

서울에서 속초로 향하는 고속버스가 마지막 고개 미시령 터널을 빠져나가면 사람들은 탄성을 지른다. 오른쪽 차창 너머로 눈같이 하얀 울산바위가 동서로 우뚝 솟아 웅장한 자태를 드리우고 있기 때문이다. 옛날 옛적 금강산에 제시 이르지 못한 울산바위가 선택한 장소가 바로 설악산이었다. 그만큼 경관이 수려하다. 나와 함께 고속버스를 탔던 노령의 신사도 연신 휴대전화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대기 바빴다.

설악산국립공원은 생명 다양성도 높아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현재 천연보호구역이자 그 자체가 천연기념물 제171호다. 또한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카테고리Ⅱ 국립공원이며 유네스코가 지정한 우리나라 최초 생물권보전지역이다. 이곳에 오색케이블카가 만들어지면 상부정류장과 하부정류장 그리고 이를 연결하는 6개의 지주가 설치될 것이다. 케이블카 자체가 경관을 해치고 직접 설악산을 훼손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또 다른 문제는 이용강도가 높아짐에 따른 2차적인 훼손이다. 상부정류장 예정지는 대청봉에서 불과 1.1킬로미터 떨어진 지점이다. 30분이면 대청봉에 오를 수 있다. 양양군은 대청봉으로 오르는 길을 차단할 것이기 때문에 대청봉이 훼손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 한다. 오히려 탐방객이 분산되어 설악산 훼손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취재를 위해 속초 시내에서 만난, 오랫동안 설악산 지킴이를 자청해온 설악녹색연합 박그림 대표는 손사래를 쳤다. “눈앞에 대청봉이 보이는데 안 갈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상부종점 일대가 전망이 좋으면 그나마 만족하고 내려갈 수도 있는데 그렇지도 않습니다. 정상에 대한 욕구는 빗발칠 것이고 결국은 허용하게 되어 있어요. 지금 한해 50만 명이 대청봉에 올라가는데 케이블카가 뚫리면 100만 명이 올라갈 거예요. 그리고 훼손문제가 설악산 전체로 퍼질 겁니다. 케이블카 타고 올라가서 걸어서 내려올 사람도 생길 테니까요.” 그는 탐방객들이 분산될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오히려 반대라고 지적했다. 등산으로 올라가는 사람과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는 사람은 산을 보는 관점이 달라, 아무리 케이블카가 있어도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걸어서 가기 때문이다. “결국, 지금 상황에서 케이블카가 하나 더 생기는 것은 분산이 아니라 집중입니다.”


기존 설악케이블카의 가르침

호주 쿠란다(Kuranda) 국립공원의 스카이레일(Skyrail)은 양양군은 물론이거니와 국립공원에 케이블카를 만들고자 하는 지자체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성공사례로 꼽는 곳이다. 그러나 정작 이들은 중요한 점을 놓치고 있다. 우선 쿠란다 국립공원 탐방객들은 우리나라처럼 등정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쿠란다 전망열차를 타고 올랐다가 스카이레일을 타고 내려오거나 혹은 그 역의 코스를 이용할 뿐이다. 설악산의 기존 탐방로를 모두 폐쇄하고 케이블카만 운영하지 않는 이상, 오색케이블카와 스카이레일을 비교할 순 없다. 또한, 일반적으로 케이블카로 인한 훼손이 가장 심한 부분이 상하부 정류장인데, 스카이레일은 상부 정류장이 이미 마을이어서 훼손문제도 작은 편이었다. 결국, 우리네 상황과 전연 맞지 않은 것이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했던가? 반면교사로 삼을 케이블카 사례는 매우 가까이 있었다. 이미 설악산국립공원에서 운행중인 설악케이블카다. 이날 나는 설악케이블카를 타고 정상부인 권금성을 올랐다. 그리고 곧 어렵지 않게 이색 구경을 할 수 있었다. 해발 800여 미터의 산꼭대기에서 슬리퍼며 구두 심지어 하이힐을 신은 사람까지 쉽게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모두 케이블카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현재 설악산 전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다. 어떤 이는 해발 1676미터의 중청대피소까지 불판을 지고 와 삼겹살을 구워먹는다고 한다. 등산을 위한 계단이나 데크 등의 시설이 너무 편한 탓이다. 케이블카는 이런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할 것이다.

우려되는 정상부 훼손도 설악케이블카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현재 권금성 봉화대 일대는 민둥한 바위산이다. 탐방객들은 이것이 본래의 모습이라 생각하기 쉬우며 나 또한 그랬다. 그러나 예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이곳도 과거에는 초목이 자라나는 지역이었다. 그러나 케이블카가 끊임없이 관광객들을 실어 날랐고, 과도한 인파에 짓밟혀 결국 현재의 민둥한 바위산이 됐다. 오색케이블카가 세워지면 대청봉 일대에서 벌어질 일이다.

호주 쿠란다 스카이레일


허황된 지역 발전의 꿈 버려야

양양군은 케이블카 사업의 근거로 탐방객 분산이니 노약자와 장애인의 권리니 갖가지 구색 맞추기성 이유를 들었으나 결국 진짜 목적은 지역 발전으로 귀결된다. 하지만 케이블카가 과연 지역발전에 이바지할까? 직접 다녀온 바대로라면 회의적이라 대답할 수밖에 없다. 이유는 케이블카로 인해 ‘빠른 관광’ 현상이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당일치기로 설악산에 다녀온 나는 해발 800여 미터의 권금성 봉우리를 불과 10여 분만에 올랐다. 내가 타고난 산꾼이기 때문이 아니다. 설악케이블카가 있었던 탓이다. 사람들은 이곳에 머물지 않았다. 설악케이블카 상하부 정류장 일대는 사람들로 붐볐지만, 근처의 숙소나 식당은 고요했다. 박그림 대표도 이를 알고 있었다. “서울에서 양양까지 몇 년 후면 고속도로가 개통됩니다. 1시간 반이면 가게 될 거예요. 그런데 오색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그곳에서 머물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다들 속초나 강릉으로 가거나 서울로 돌아갈 거예요. 그러면 오색은 지금보다 훨씬 심한 공동화 현상이 일어날 겁니다.” 케이블카로 지역 주민들이 일확천금을 얻을 수 없다는 이야기다.

6년 전 제주도는 제주의 화산지형이 국내 최초로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는 쾌거를 이룬 바 있다. 이후 자연유산지구 탐방객이 두 배 이상 증가했다고 한다. 그런데 제주보다 설악산이 먼저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될 뻔했다는 사실을 아는가? 1990년대 중반 문화재청은 유네스코에 설악산 세계자연유산 등재를 신청했다. 그러나 개발에 제약이 생길 것을 우려한 지역주민들은 프랑스 파리의 유네스코 본부까지 찾아가 반대 성명서를 전달했고, 실사단이 도착한 김포공항에서 반대시위를 했다. 결국, 설악산은 심의조차 받지 못했고 앞으로도 영원히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할 수 없게 되었다. 지금은 모두가 후회하고 있을 터, 이제 지역주민도 눈을 떠야 할 때다.

“탐방객이나 우리나 산양이나 다 같이 더불어 살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설악산이 지역민을 먹여 살렸어요. 설악산이 아름다웠기에 관광객들이 왔고 그 사람들을 통해 지역민들도 먹고살았어요. 설악산이 지역민들에게 어떤 존재인지 깨달아야 합니다.” 박그림 대표는 설악산에 기대 사는 사람들이 이제 조금이라도 설악산으로부터 받은 것을 돌려주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설악산의 미래가 지속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마지막으로 강조했다. “아름다움을 본다는 것은 아름다움이 늘 간직될 수 있도록 지킬 의무가 있는 거예요. 의무는 안 하면서 권리만 찾아서는 안 됩니다.”

나는 내 생애 첫 설악산에서 아직은 건재한 설악산의 아름다움을 분명 누렸다. 이 글은 어쩌면 그에 대한 의무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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