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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잡설

친구? 지랄하네...

by 막둥씨 2012. 9. 1.

이 말은 요즘 화제인 드라마 <응답하라 1997>에서 나온 대사다. 윤제(서인국)가 시원(정은지)에게 직접적인 고백을 하지만 시원은 그냥 친구로 남자고 제안한다. 이에 윤제는 "남자가 짝사랑하는 여자에게 구질구질하게 가슴에 있는 것을 다 털어 놨다는 것은 다시는 안볼 생각이라는 것"이라며 자리를 떠난다. 그리고 문 앞을 지날 때 잠시 멈춰 혼잣말 하는 것이다. "친구? 지랄하네...."

극 중 대사가 이렇게 가슴에 남는 것도 참 오랜만이다. 나의 개인적 경험에 근거한 대리만족의 카타르시스를 부정하진 않겠다. 수많은 남성 혹은 여성들이 친구로 지내자는 마지막 말을 뒤로 한 채 상대방과 멀어졌을 것이다. 멀어지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극중 윤제처럼 속 시원히 말해보진 못한다.

그렇다고 윤제의 방법이 고급(?)스러웠나 하면 그렇지도 않다.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의 고백방식이다. 평소에는 표현도 하지않고 내색조차 않더니 급작스런 고백을 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 방식에 손사래를 친다. 그들에 따르면 고백은 확인단계일 뿐이다. 이미 관계는 그 이전에 모두 형성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자연스럽게.

그렇다면 친구가 된다는 것은 정말 '지랄'인가? 이쯤에서 전형적인 논의거리인 남녀사이에 친구가 가능한가에 대한 문제를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한다. 가능하다는 주장과 불가능하다는 주장이 둘 다 팽배한 편인데, 그래도 후자가 더 목소리가 크다. 친구라 생각했는데 연인으로 발전한 예는 있어도 그 반대는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둘 중 한명이라도 다른 마음이 생겨난다면 그 관계는 더이상 우정이 아니다. 

십수년전 드라마에서 본 한 장면이 떠오른다. 여자주인공이 남자주인공의 고백을 받지만 어릴적 부터 친구로 지냈기에 떨리는 감정이 없는 친구일 뿐이라 말한다. 남자 볼에 '뽀뽀'를 해보지만 감정이 생기지 않는 것은 여전하다. 그러자 남자는 "그럼 이래도?"라고 말하며 여자에게 '키스'를 한다. 이렇게 둘은 이어진다.

그렇다. 친구가 되다는 것은 '지랄'이다. 하지만 그 지랄맞은 불편함을 이겨낸다면, 다시 친구에서 연인이 될 수도 있다. 남녀사이에 친구라는 것은 잠정적일 뿐이고, 모든 이성은 잠재적 연인이기 때문이다. 다시 드라마 <응답하라 1997>로 돌아오면 이 둘은 결국 각자의 길을 가게 된다. 하지만 몇년 뒤 이 둘은 운명처럼 - 이라 쓰고 우연히라고 읽는다 - 어느 카페에서 재회한다. 글을 쓰는 현재 방송은 여기까지 되었다. 앞으로의 전개를 더 지켜봐야 겠지만 한가지는 기억해 둬야겠다. 현실 속에서는 운명적 재회가 쉽지 않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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