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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전국일주 캠핑

[전국일주 8일차] ⑥ 정림사지

by 막둥씨 2012. 9. 26.

피카츄와 라이츄를 아는가? 만화영화 캐릭터를 물어보는 것이 아니다. 내가 물어보는 것은 분식집 메뉴다. 

 

여행을 하다보면 끼니를 먹을 시기가 적당하지 않을 때가 많다. 특히 낯선 바닥에서 캠핑을 하고 냄비에 밥을 해 먹는 가난한 여행자일수록 더더욱. 아침이나 저녁은 해먹을 수 있으니 보통 점심은 삼각김밥이나 컵라면 등의 편의점 식사를 많이 하게 된다. 정림사지는 박물관에서 매우 가까워 차는 주차장에 둔 채로 걸어나왔다. 그런데 박물관을 나오자 어김없이(?) 허기가 찾아왔다.

 

우리가 즐겨 애용하는 편의점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도로변 상가들은 죄다 무슨무슨 설비류의 건축자재 집이었고 식당이 있어도 죄다 고깃집 뿐이었다. 다행이 백제초등학교가 바로 뒤에 있어서 그런지 분식집은 하나 있었다. '꼬르륵 짱구분식'. 들어가니 너댓명의 초딩들이 슬러시를 먹은 뒤 떡볶이를 테이크아웃 하고 있었다. 

 

우리는 메뉴판을 보고 떡볶이와 김밥을 주문했다. 음식이 나오는 동안 나는 피카츄와 라이츄가 무엇인지 고민했다. '이 집에만 있는 특별 메뉴인가?' 하는 생각도 잠시 했다. 그런데 푸딩은 "피카츄됴 몰라?" 하며 면박을 주었다. 만화영화 속 캐릭터는 알지만 먹을 수 있는 피카츄는 금시초문이었다. 내가 전혀 모르겠다는 대답을 하자 푸딩이 나지막이 속삭였다.

"헐..."

 

이런 작은 것에서 부터 세대차이가 벌어지는건가 싶었다. 비록 나와 푸딩은 비슷한 세대라 이렇게 작은 것에서만 공유가 안될 뿐인데, 하물며 반세기를 건너 뛴 이들의 문화와 의식 차이는 어떠할까. 초등학생들은 김밥을 먹을 일이 별로 없어서인지 나오는데 한참이 걸렸다. 주인 아주머니는 주문을 받고 햄을 굽기 시작했다. 쌀은 씻은 뒤 밥을 안치는 일은 없어서 다행이다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입장료가 있었다. 오전에 입장료가 없었던 성주사지를 들렀다 오는 길이라 정림사지의 입장료는 당혹스러웠다. 감은사지도 입장료가 없는데.. 절터를 두고 왠 입장료란 말인가. 게다가 가격도 1500원 이나 했다. 출구 바로 뒤로 지은지 얼마 안 되어 보이는 정림사지 박물관이 보이는걸로 봐서 이 박물관 건설에 들어간 비용을 회수하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중에 찾아본 바로 정림사지 박물관은 총 150억을 들여 4년 만에 준공, 2006년 개관했다고 한다. 그 전에도 입장료는 있었던듯 하니 나처럼 야박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는듯 하다.

 

정림사지는 앞쪽엔 부여중학교와 백제초등학교가 나란히 있고 옆으로는 상가들이 한눈에 확 들어오는 부여시내 한 복판에 넓은 터를 펼치고 자리잡고 있다. 이는 백제가 부여로 도읍을 옮긴 시기(538-660)에 중심 사찰이 있던 자리라고 한다. 그 당시의 절 이름은 현재로선 알 수 없다. 현재 '정림사'지라 불리는 이유는 1942년 일본인들에 의해 조사된 이 절터에서 태평 8년 무진 정림사 대장당초(太平八年 戊辰 定林寺 大藏唐草) 라 쓰인 기와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정림사지에는 백제시대의 5층석탑(국보 제9호)과 고려시대의 석조여래좌상(보물 제108호) 그리고 발굴조사에서 드러나 복원 된 연못 등이 있다. 석축 연못은 사각의 형태로 중간에 길을 두고 양쪽으로 나뉘어져 있다. 단정하고 고요한 느낌을 자아내 눈길을 끄는데, 울타리로 막아놓은 탓에 가운데 길을 지나가 볼 수 없어 아쉽다. 석조여래좌상은 압도적인 크기로 웅장한데 백제 때 번영을 이루었던 사찰이 고려시대에 와서 다시 번창하였음을 보여준다.

 

 

주목할 것은 다름 아닌 5층석탑이다. 정림사지 5층석탑은 익산 미륵사지 석탑(국보 제11호)과 함께 2기만 남아있는 백제시대의 석탑이다. 시기적으로 목탑에서 석탑으로 넘어가는 시기의 것으로 추정하는데, 이 정림사지 석탑은 미륵사지 석탑보다 진일보한 형태라 할 수 있다. 가공의 용이함을 위해 규모를 줄임으로써 정돈된 세련미와 완숙미를 갖춘 것이다. 두 기를 모두 직접 보고 비교해 보고 싶었으나 익산 미륵사지 석탑은 현재 해체중에 있어 다소 아쉬웠다.

 

나중에 안동에서 모든 여행을 끝낸 뒤에 깨달은 것이 있다. 이 두 석탑을 비교노라면 익산 미륵사지 석탑은 안동 봉정사 극락전을 생각나게 하며, 정림사 5층석탑은 수덕사 대웅전을 떠올리게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목조건축인 안동 봉정사 극락전은 다소 투박한 모습인 반면, 역시 비슷하게 오래된 목조건축인 수덕사 대웅전은 한 단계 더 나아가 단아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까지 보아온 다른 탑과는 달리 정림사지 5층석탑은 1층 탑신에 글씨가 세겨져 있다. 이는 신라와의 연합군으로 백제를 멸망시킨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백제를 정벌한 기념탑' 이라는 뜻의 글귀를 새겨놓은 것으로, 한때 '평제탑' 이라 잘못 불리어지는 수모를 겪기도 한 아픈 역사의 표증인 것이다. * 그렇다고 소정방이 문화재 훼손을 한 것은 아니다. 당시에는 문화재가 아니라 그저 건축물이었을테니. 일부 개신교인들이 종교적 건축이기 이전에 우리의 문화유산인 사찰등에 가서 벽에 십자가를 그려넣는 것이 바로 문화재 훼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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