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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잡설

세계화 시대 속 정(情)

by 막둥씨 2012. 8. 31.

요즘은 방송에서도 외국인이 많이 나온다. 아니 예전에 로버트 할리나 이다도시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방송가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것 처럼 꽤나 오래된 일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렇게 외국인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은 <미녀들의 수다>에서 집대성 되었고 꽃을 피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은 프로그램이 끝났지만 이미 <미녀들의 수다>는 현재에도 활동하는 수많은 방송인을 배출했다.

이렇게 어느 방송이든 외국인이 나오면 누구나 거쳐야 할 관문이 있으니 바로 '김치'다. 한국 사람들은 남녀노소 관계없이 외국인에게 김치를 좋아하느냐고 물어본 뒤 그들이 맛있게 먹으면 좋다고 박수까지 친다. 아마 김치를 먹지 못했다면 실망한 낫빛을 감추지 못했을 것이다. 한국에 오래 살았던 한 외국인은 이렇게 외국인에게 김치를 강요하는 한국인들의 문화가 한 편으로는 웃기면서도 불편하다고 밝힌 바 있다. 생각해 보라. 우리가 외국에서 그런 입장에 처한다면 어떠할까. 우리 입맛에 맞지도 않은 음식을 강요당한다면.

어쨋든 내가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그 외 또 하나 어김없이 묻는 질문인 '왜 한국이 좋으냐'에 관한 것이다. 돌아오는 대답 중 흔히 들을 수 있는것이 바로 '정(情)'때문인데, 이웃에 대한 관심 더 나아가 낯선 타인에 대한 동질감으로도 표현될 수 있는 정은 개인주의가 자리잡은 외국인들에겐 낯선 따뜻함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정은 동시에 '간섭'의 다른 이름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웃의 가정사를 시시콜콜 궁금해 하고 종종 그 도를 넘어 참견해 온다. 물론 악의는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생활에 대한 존중이 분명 부족하다. 어쩌면 단칸방에 모든 가족이 지내야 했던, 아니 여러 가족이 한 집에 살다시피 해야 했던 어려웠던 시절의 영향이 클지도 모른다. 이웃은 친척이 아니지만 분명 '이웃사촌'인 것이다. 하지만 원룸에 살았던 지인이 들려준 '거울을 사서 벽에 기대 놓았는데 외출했다가 돌아오니 벽에 못질되어 걸려 있었다'는 일화는 무섭기까지 했다. 건물주 할아버지의 지나친 정인 셈이다.

우리나라는 예전에 비해 개인주의가 빠르게 정착해 가고 있다(이기주의가 아님을 유의). 아마 지금 내 또래 세대들은 더이상 이웃을 사촌이라 생각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철저히 타인이다. 이런 사고방식을 가진 젊은이들을 보며 종종 어른들은 혀를 끌끌 차기도 한다. 하지만 개인주의 속에는 타인에 대한 존중이 들어있다 할 수 있으니 마냥 혀를 끌끌 찰 일만은 아니다. 타인의 삶 개인의 사생활에 대한 존중 말이다.

이제 두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잡아야 할 때다. 정과 사생활존중은 결코 양립할수 없는것이 아니다. 개인주의 확산에 큰 영향을 끼쳤으리라 짐작되는 아파트. 하지만 이런 아파트에서도 옆집에 누가 사는지 충분히 알 수 있고 그들과 교류할 수도 있다. 이래서 아파트 반상회장은 안 온 사람 중에서 선출해야하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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