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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잡설

무연휘발유와 클레어 패터슨 Clair Patterson

by 막둥씨 2012. 9. 12.

당신은 무연휘발유의 '무연'이 무슨 뜻인지 아는가? 어릴적 나는 무연휘발유는 연기가 나지 않는(無煙) 휘발유로 생각했었다. 실제 집에서 사용하던 고물 디젤엔진트럭은 연기가 풀풀 나는 것에 비해, 무연휘발유를 연소하는 세단 승용차들은 연기가 거의 나지 않았으며 엔진 소리도 조용했기에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보니 무연은 연기가 나지 않는다는 뜻의 무연(無煙)이 아니라 납이 첨가되지 않았다는 무연(無鉛)이란 의미였다. 그렇다면 유연(有鉛)휘발유도 있을터인데, 과연 납의 함유에 따른 차이는 무엇일까?

1923년 2월 1일부터 판매된 유연휘발유의 대표적인 상품이 TEL(테트라에틸납)을 첨가한 에틸사(社)의 유연휘발유였다. 납을 첨가함에 따라 옥탄가[각주:1]를 높임으로써 경제면에서는 매우 성공적인 작품이었다. 옥탄가가 높다는 것을 쉽게 풀이하자면 '불이 잘 붙지 않는 휘발유' 라 표현할 수 있다. 휘발유를 사용하는 내연기관은 혼합기를 연소실에 밀어넣은 후 압축한 다음 점화 플러그에서 발생한 불꽃을 이용해 한순간에 연소시키고 그 반발력이 출력으로 나오게 된다. 

노킹현상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그림 (출처:보배드림)

하지만 불이 잘 붙는 휘발유는 엔진의 고열 고압에 견디지 못하고 적절한 연소 타이밍이 아닌 시점에서 자연발화가 되어버리는데 이것을 '노킹'이라고 한다. 따라서 노킹이 일어나면 엔진에도 무리가 가고 출력도 저하된다. 불이 잘 붙지 않는 휘발유는 엔진 내부의 고압 고열에 잘 견디기 때문에 노킹이 잘 일어나지 않는 셈이다. 또한 옥탄가를 높이는 것 외에도 납은 엔진 실린더의 벨브시트 부식을 방지하는 기능도 있어 엔진의 수명도 길어지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이렇게 납을 첨가한 유연휘발유는 경제성은 있었으나 환경에는 치명적이었다. 납은 뇌와 중추신경계에 손상을 입힐 수 있는 신경독성물질이다. 시력상실, 마비, 암, 정신착락 등의 증상을 일으킬 수도 있다. TEL을 만들던 공장에서도 노동자들이 사망하기 시작했으나 에틸사는 납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극구 부인했고 정부도 이런 재벌기업과 유착해 적극적 대처를 하지 않았다.

이런 납의 위험으로부터 세상을 구한것은, 지구의 나이가 45억년이라고 최초로 규명한 지질학자 클레어 패터슨Clair Patterson이었다. 우라늄이 납으로 붕괴되는 속도를 통해 암석의 연대를 측정하는 방법을 연구하던 패터슨은 고민이 한가지 있었다. 시료가 공기 중에 노출되자마자 대기 중의 납에 의해 오염되어 버리는 것이다. 대부분의 시료에 정상치의 200배에 가까운 납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결국 그는 운석을 이용했다. 운석은 태양계 형성 초기에 만들어져 납에 오염되지 않았을 것이라 가정, 이를 바탕으로 지구이 나이를 규명해 낸 것이다.  

클레어 패터슨 Clair Patterson

이후 패터슨은 대기 중의 납의 농도를 밝히는 일에 몰두했다. TEL이 사용되기 시작한 1923년 이전의 납의 농도와 비교하기 위해 그린란드에 쌓여있는 눈 속의 납 농도를 조사하였다. 그린란드와 같은 지역은 그 해 내린 눈에 의해 얼음이 층층이 쌓이게 된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었다. 그래서 알맞은 얼음의 층을 조사하면 그 해의 납의 농도나 다른 결과를 알아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현대 기후학 연구의 기초가 된 빙핵 연구의 시초다. 그리고 그는 1923년 이전에는 대기 중에 납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유연휘발유가 1923년부터 판매가 되었으니 이는 놀랄 일이었다.

당시까지 납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체계적으로 연구된 결과가 없었다. 그나마 몇몇 연구들도 유연휘발유 제조회사들이 지원하는 연구소에서 나온 것으로 신뢰할 수 없었다. 그 중 한 연구소의 화학적 지식이 없던 의사는 피실험자들을 납에 노출시킨다음 소변검사를 했으나 납 성분이 검출되지 않았기 때문에 무해하다고 판정을 내렸다. 하지만 납은 체내에 축적되는 중금속이었기 때문에 소변으로 나올리 없었다.

패터슨이 상대해야 하는 적은 고위직에 많은 후원자를 가진 대기업으로 혼자서 싸우기는 힘든 상대였다. 미국석유협회에서 지원해주던 연구자금이 끊겼고, 납 산업계는 그가 재직 중이던 대학의 이사에게 그를 해임하라고 압력을 넣었다. 하지만 결국 끈질긴 노력 덕분에 1970년 청정대기법이 제정되었고, 1986년에는 미국에서 모든 유연 휘발유의 판매가 금지되었다. 그 후 미국인 혈액내 납 농도는 80%가 감소했다고 한다. 그러나 납은 쉽게 사라지지 않으므로 당시 공기 중으로 배출된 납은 아직도 있으며, 우리 몸 속의 납 농도는 한 세기 이전 사람들보다 625배나 많다. 게다가 일부 군부대나 후진국에서는 아직도 유연휘발유를 사용하고 있다고 하며, 에틸사는 판매금지법이 제정되지 않은 이런 후진국에게 여전히 유연휘발유를 공급중이라 한다.

신학자 라인홀드 니부어는 '개인은 도덕적이나 사회는 비도덕적'이라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아무리 개인적인 차원에서 도덕적이고 훌륭한 사람이라도, 어떤 집단에 속해있고, 그 집단이 타락했을 경우에는 비도덕적이고 타락한 행동을 하게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개인은 타인의 이익을 존중하지만 기업등의 집단은 그러지 못하다. 이는 우리가 끊임없이 사회와 집단을 감시해야 하는 이유다. 

  1. 휘발유 연소 기관에 있어서 이상적인 노킹 억제력을 보이는 "이소옥탄(Iso-Octane, 트리메틸페탄)"이 노킹에 저항하는 능력을 100%로 보고, 반대로 좋지 않은 노킹특성을 가지는 노멀 헵탄(n-Heptane)의 노킹 저항능력을 0%으로 봤을 때, 그 휘발유가 어느정도 노킹 저항력을 가지고 있는가를 표시한 것.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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