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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기고

"공짜로 관광시켜준다 카드만" 주민투표 앞둔 영덕은 지금

by 막둥씨 2015. 11. 4.

지난 10월 13일 열린 영덕핵발전소 유치 찬반 주민투표 관리위원회 출범식사진제공 영덕 핵발전소 유치찬반 주민투표관리위원회

지난 10월 15일, 한낮에 출발한 일정인데 땅거미가 질 무렵에야 영덕군청에 닿았다. 영덕은 서울에서 버스로 4시간 20분, 자가용을 이용하면 5시간은 잡고 가야 하는 곳이다. 서울-부산을 2시간 30분 만에 주파하는 고속전철 시대지만, 영덕은 기차 편마저도 여의치 않다. 낙동정맥의 험난한 산악 지형으로 막혀 있어 예부터 내륙에서의 접근이 좋지 않았던 탓이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청정 영덕’의 이미지는 그 덕에 생겼으리라.


군청 내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군청 외부 주차장의 하얀 천막으로 향한다. 천막 전면에 한 글자씩 붙어 있는 A4용지 속 글자가 이곳을 안내한다. ‘영덕 핵발전소 유치찬반 주민투표 추진위원회’. 천막 입구에는 작은 안내 표지가 하나 더 붙어 있다. ‘한수원, 경찰 출입금지’.


이곳은 영덕이 탈핵으로 가는 험난한 여정의 중심지다. 영덕은 다가올 11월 11일 핵발전소 유치찬반 주민투표를 앞두고 있다.


야학의 불 밝힌 삼화1리


천막에 들었지만 때마침 저녁 시간이라 주민투표 추진위원회 사무국은 썰렁했다. 콘크리트 바닥 위에 성기게 지어진 천막 안 온도는 밖과 다를 바 없게 느껴졌다. 몸을 움츠린 채 한참을 기다리니 식사를 마치고 돌아온 양이원영 환경연합 탈핵에너지팀 처장과 활동가들을 만날 수 있었다. 반가웠지만 인사할 새도 없이 이들은 부랴부랴 노트북이며 각종 장비들을 챙긴다. 주민을 위한 교육이 급하게 잡혔다고 했다. 이들이 알려준 대로 내비게이션에 삼화1리 마을회관을 찍고 어둠을 달렸다.


오후 7시 30분. 삼화1리 마을회관에는 20명이 넘는 주민들이 모여 있었다. 공간이 좁아 방과 부엌의 문을 터야 할 정도였다. 각지에서 파견된 사무국 활동가들은 ‘주민투표 설명 자료’를 나누어줬다. 방사능과 핵발전소의 실상이 담긴 자료였다. 이윽고 양이원영 처장의 교육이 시작됐다. 주민들은 어려운 내용엔 다소 난해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전 세계 442개 원전 중 6개가 폭발했으며, 이는 75개당 하나 꼴로 폭발 사고가 난 것’이라는 설명에는 모두가 귀를 쫑긋 세웠다. 교육을 돕던 계대욱 대구환경연합 활동가는 지금까지 교육을 7~8번 정도 했다면서 마을마다 편차가 있다고 했다. “제일 많이 왔을 때는 55명, 없을 때는 4명인 적도 있었어요. 특히, 55명이 온 날은 경주 양남면 나아리 주민이 직접 오셔서 땅값 문제라든가 혜택이라곤 전기요금 1만6000원 정도 할인해주는 것밖에 없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자리가 모자랄 정도였어요. 그때 마을 주민들도 솔직한 질문을 많이 하셨어요. 직접 피해가 피부로 와 닿게 되니 좋았어요.”


교육의 말미에 양이원영 처장이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낸다. “지금 전기는 남아돌기 때문에 사실 원전 준공 일정은 부지만 확보한 상태로 미루어질 수 있습니다. 지금 가장 급한 건 고준위 핵폐기물 처리 문제에요.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가 2020년까지 부지를 선정하라고 했거든요. 원전 쪽에선 전기보다 그게 더 급합니다.” 양 처장의 말을 듣던 한 어르신이 탄성을 지르셨다. “그럼 영덕이 1순위네. 제일 힘없는 영덕으로 또 오는 기네.” 다소 침울해진 분위기를 깨며 양이원영 처장이 강조했다. “저희는 투표권이 없습니다. 그래서 영덕 군민인 여러분들이 꼭 투표하셔야 해요.”



10월 21일 원안위 앞에서 열린 영덕 주민투표 지지 기자회견 ⓒ이연희 / 환경운동연합



10년 전과 달라진 주민들


이튿날 아침. 포항환경연합 전병조 활동가가 추진위원회 사무국을 가장 먼저 열었다. 전날 해 질 녘 도착한 탓에 자세히 보지 못했는데, 군청 바깥 주차장에 세워진 천막은 주민투표 추진위원회였고, 천막 오른편에 새로 생겼다는 컨테이너는 지난 10월 13일 발족한 영덕 핵발전소 유치찬반 주민투표 관리위원회 사무실이었다. 전병조 활동가는 발족 이틀만인 어제 주민투표 관리위원회 공동위원장 한 분이 사임하게 된 내막을 전했다. “이민석 영덕군 선거관리위원회 부위원장님이 원래 이번 주민투표 관리위원회 공동위원장이셨어요. 그런데 이를 안 한수원이 산자부로 연락을 했어요. 그러니 산자부가 중앙선관위로, 중앙선관위가 다시 지역선관위로 연락해서 ‘선관위 부위원장 할래? 거기 공동위원장 할래?’ 협박 했대요. 그래서 어제 사임하셨어요.” 사무국 내부에서는 우리가 이만큼 관심과 관리를 받고 있다고 오히려 뿌듯해 했다며 그는 웃는다.


사무국의 아침 회의가 끝나갈 무렵, ‘국가유공자’라 새겨진 모자를 쓴 할아버지가 사무소를 직접 찾으셨다. “투표 할라믄 읍내로 나와야 허나 아니면 면 단위로 허나?” 어르신은 면단위로 한다는 대답을 확인하고는 투표 명부에 서명하신다. “내는 반대다. 지역에 피해가 오니께. 핵발전소 들어오는 데 경계가 우리 집에서 100미터 근처 아이가. 들어가는 마을은 찬성한다 카는데 다른 마을은 다 반대한다.” 올해 나이가 무려 90이신 어르신은 한수원이 보내주는 관광도 다녀왔다고 하셨다. “공짜로 관광시켜준다 카드만 월성 핵발전소 보내 주드라. 핵발전소 옆에 살아도 괜찮다고 보여줄라꼬. 첨부터 핵은 안 된다 하고 갔다. 개인적으로 울진도 함 보고 왔는데 젊은 사람 다 떠나고 없드라. 보상 받을라고 집만 남아있고 안은 텅텅 비었드라. 여기 있으면 자손 몬 낳는다고.” 자신을 국가유공자이자 참전용사라고 당당히 밝히신 어르신은 “나라를 우리가 세워놨는데 괄시를 받는 것 같다.”고 언성을 높이셨다.


젊은 사람들의 우려는 더욱 컸다 . 읍내에서 만난 유치원생 아들을 둔 30대 엄마는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젊은 사람들은 다 반대해요. 그런데 원전이 들어올 것 같아요. 우리가 아무리 반대 시위를 해도 들어오게 되면, 아기 엄마들끼리는 그냥 이사 가겠다고 하고 있어요. 희망이 없잖아요.”


사실 10년 전인 2005년 영덕은 중저준위 방폐장을 유치하기 위해 포항, 군산, 경주 등과 경합을 벌였던 곳이다. 당시 영덕의 방폐장 유치 찬성률은 80퍼센트에 달했다고 한다. 당시를 기억하는 관계자들은 영덕군이 주도한 투표라는 점과 투표 과정의 문제점 그리고 정부의 20여 년간의 괴롭힘 끝에 자포자기할 수밖에 없었던 군민의 심정 등이 작용했다고 분석한다.

하지만 핵발전소는 달랐고 주민들도 변했다. 주민투표 추진위원회 차천영 사무처장은 특히 후쿠시마 사태 이후 영덕 주민들의 의식이 많이 변했다고 말한다. 후쿠시마 직후 판매량이 급증했던 소금 구매가 이를 똑똑히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영덕 군민들은 김장 등에 필요한 소금을 농협을 통해 주로 유통하는데, 보통 연간 3만 포쯤 팔립니다. 그런데 쓰나미 직후 25만 포가 한 해에 팔렸어요. 일본 바다의 핵물질이 우리나라에 오기 전까지 만들어진 깨끗한 소금을 사겠다는 겁니다. 10년 먹을 소금을 샀다고들 말하는데, 이후 여론과 의식이 많이 바뀌었어요.”


올해 들어 진행된 네 차례에 걸친 여론조사도 차 사무처장의 말을 증명하고 있다. 지난 1월 지역 언론사의 조사에서는 영덕 핵발전소 반대 51.8퍼센트, 찬성 35.8퍼센트였으나, 이후 3월 다른 언론사의 조사에서는 반대 53.3퍼센트 찬성 39.4퍼센트로, 4월 영덕군의회의 조사에서는 반대 58.8퍼센트, 찬성 35.7퍼센트로 나타났다. 그리고 8월 주민투표 추진위원회가 한 마지막 조사에서는 주민의 61.7퍼센트가 반대했으며 찬성은 30.6퍼센트에 그쳤다. 꾸준히 반대 여론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으로, 주민투표로 원전 유치 문제를 결정하자는 데에는 무려 68.3퍼센트의 주민이 동의하기도 했다.



청정한 영덕 사진출처 영덕군청



청정한 영덕에 군민의 살길 있어


오전 11시 무렵. 투표를 안내하는 방송 트럭이 사무국 천막을 출발했다. 오일장이 서는 날이면 장터에서 안내하지만, 오늘은 공교롭게도 장이 서지 않는 날이다. 이런 날은 마을을 돌며 가정마다 투표 안내물을 나누어주곤 한단다. 오늘은 마산창원진해환경연합 배종혁 위원장이 홀로 차를 타고 마을을 누빈다. 읍내 빌라에서는 가구 수가 많아 안내물 배포가 더뎠는데 외곽 시골 마을에 접어드니 집마다 거리가 멀어 더디다. 하지만 배 위원장은 꼼꼼하게 모든 집에 안내물을 나누어준다.


그가 안내물을 나누어주는 사이 확성기에서는 방송이 흘러나온다. “이곳 영덕의 주인은 4만 영덕 주민이고 우리의 동의 없이 핵발전소를 지을 수 없다는 것을 똑똑히 보여 줍시다.”, “우리의 운명은 중앙 정부도 한수원도 아닌 이곳 영덕에 살고 있고 앞으로도 살아갈 4만 영덕 군민이 결정해야 합니다.”, “11월 11일 주민투표에 반드시 참여하여 우리들의 권리를 지켜갈 것을 간곡히 호소합니다.” 방송이 이어지는 사이 트럭은 어느덧 읍내를 벗어나 황금빛 들판을 달린다. 논밭에서는 벼 수확이나 고구마 수확이 한창이다. 아직 사과도 그대로 달려 있다. 수확의 기쁨을 만끽하던 한 농부가 차량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기도 한다. 조용하고 깨끗하며 평화로운 농촌 마을 풍경이다.


안내 차량을 뒤로하고 핵발전소 예정 부지인 영덕읍 노물리와 석리 일대 바닷가를 찾았다. 트레킹 코스인 ‘블루로드’가 짙푸른 동해와 수면에서 부서지는 햇볕을 끼고 여행자를 향해 손짓한다. 블루로드는 포브스코리아가 주최한 2015 소비자선정 최고의 브랜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곳에 핵발전소가 지어지면 이 길도 끊어지는 게 아닐까? 그리고 블루로드가 주던 청정한 이미지도 방사능에 오염되는 건 아닐까?


영덕이 고향이자 오랫동안 목회자로서 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투표 추진위원회 상임위원장 백운해 목사는 영덕의 가치는 지금 이 모습을 그대로 유지할 때 있다고 확신한다. “우리가 20~30년 전에는 물 사 먹을 줄 몰랐어요. 지금은 물 사 먹는 게 보편화가 됐습니다. 그런 것처럼 확신하건대, 앞으로는 청정함이, 맑은 자연이 재산이 되고 대세가 되는 때가 옵니다. 그렇다면 인구도 적고 청정 지역을 보전하고 있는 영덕이 각광받는 시대가 오지 않겠어요?”

 

주민의 뜻 받아들여야


군민들이 직접 만들 영덕의 미래상은 오는 11월 11일부터 이틀간 진행되는 주민투표에서 결정될 것이다. 하지만 정부나 핵마피아와의 싸움은 투표 결과가 나오는 즉시 끝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싸움이 시작될 가능성이 크다. 백운해 위원장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의지는 단호하다. “반대가 절대다수로 나온다고 해도 고시 예정지를 바로 취소하진 않을 거예요. 우리는 지정 고시를 철회할 때까지 계속 요구할 겁니다. 만약 그런데도 강행한다면 정부도 예상치 못한 불상사가 발생할 겁니다. 그것은 약속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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