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때와 마찬가지로 느닷없이 시작되었다. 출발 열흘 가량 전 시험기간. 갑작스레 구성된 멤버에 계획이라 모두들 들떠 있었다. 덕분에 시험공부를 위해 자리를 앉으면 열흘후의 상상속으로 빠져들기 바빴다.
출발 전날에서야 나는 수원으로 갔다. 그리고 도착하자마자 짐을 풀고 중고자전거를 사기 위해 돌아 다녔다. 하지만 중고자전거를 파는 곳을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온 시장과 상가 여러 자전거샵을 돌아다닌후 결국 포기상태로 집으로 가려는데 저 멀리더 '종로 자전차'라는 허스름한 간판이 보였다. 자전차라... 느낌이 왔다. 다행이 거기서 중고 자전거를 구입할 수 있었다.
첫째날
경기도 수원 -> 충남 아산 둔포면
최종 점검과 장을 보고 오전 10시 30분이 넘어서야 출발할 수 있었다. 갓길도 제대로 안되어 있었고, 많은 양의 차들이 무서운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위성도시들도 많아서 몇 번이나 시내를 가로질러 가야 했다. 날씨도 매우 더워서 첫날이라 무리가 덜되게 잡은 일정인데도 불구 도착할 때에는 완전 기진맥진이 되었다. 오후 6시무렵 친구네 같이 동행한 친구의 집에 도착했다. 친구 부모님의 환대를 받으며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었다. 내일 비가 온다고 하니 하루 쉬고 가라고 하신다.
둘째날
충남 아산 둔포면 -> 예산 -> 홍성 -> 보령시 주산면 시루뫼
아침을 먹고나니 9시무렵. 하늘은 잔뜩 흐린데 비는 오지 않는다. 일기예보에는 비가 올 것이라고 되어 있다. 어떻할까. 나는 하루라도 쉬지 않고 가고 싶었다. 이제 겨우 하루 달렸을 뿐인데 하루를 쉬기에는 뭔가 나태한 느낌이 든다. 결국 30분만에 급하게 채비를 하고 나선다. 자전거를 끌고 길로 나오는데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한다. 큰길로 나오니 추적추적 내린다. 비 덕분에 오히려 시원했고 시야에 지장을 중 정도는 절대 아니라서 어제보다 오히려 낫다. 지도상과 인터넷에서 거리를 측정해 보고 결정한 오늘의 목표는 홍성.
셋째날
보령시 주산면 시루뫼 -> 군산 -> 전라북도 김제 -> 부안
△ 금강 하구둑으로 가는 길
생각보다 출발지에서 하구둑 까지는 멀었다. 아마 장항읍내를 둘러와서 그럴지도 모른다. 장항은 이름을 많이 들었기에 적어도 군 정도는 될 줄 알았는데 서천군에 속한 장항읍 이었다. 어쨋든 지나가는 길에 본 항구의 모습은 흐린 날씨와 더불어 우울했다. 무언가 퇴색되어 버린 도시를 보는 것 같아 쓸쓸했다.
넷째날
부안 -> 고창 -> 전라남도 영광 -> 함평
ⓒ gaemiz
이제것 이틀은 친구집이랑 친구의 외할머니 댁에서 묵었고 하루는 찜질방을 갔었다. 오늘은 돈을 아끼고 싶어 마을회관을 찾아 봤다. 찾다보니 새로 지은 마을 회관이 하나 보여 마을 주민에게 물어 이장님댁에 찾아 갔다. 하지만 퇴짜를 맞고 결국 헤매던중 결국 교회에서 잠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다섯째날
함평 -> 무안 -> 목포대 -> 목포
생각보다 조금씩 더 달린 덕분에 오늘은 한나절만 달려도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였다. 그래서 중간에 가는길에 많이 쉬었고 겨국 목포대-목포대는 목포시내에서 십수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다-에 들러 스탠딩PC에서 인터넷도 하며 여유를 만끽했다. 그렇게 꽤 오랫동안 놀다가 이제 슬슬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포에 도착해서 자전거도 처분해야 하고 쉴곳도 찾아야 하니 말이다. 목포대 정문을 나와 막 출발하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이런 제길! 하필 출발하려고 하니 비가 오다니. 우리는 100미터도 가지 않아 나무 밑에 자전거를 세웠다. 그리고 간식을(고작 100미터 달리고!) 까먹으며 자전거를 정비했다. 하지만 비는 그치지 않았고 결국 우의를 챙겨입고 갈 수밖에 없었다. 둘째날 비맞으면서 달릴 때는 시원하고 기분도 좋았는데 오늘은 흥도 나지 않고 비에 축축하기만 했다.
여섯째날
목포 -> 제주
찜질방에서 일어나 택시를 타고 여객선터미널로 갔다. 거리를 보니 걸어가볼까 생각했던게 참 어리석었다. 도착해서 표를 끊고 나니 한시간정도 시간이 남아 아침을 먹기로 했다. 혹시나 배멀미를 할지도 모르니까. 식당을 찾아 길로 나왔는데 대부분 문을 닫았다. 한 식당이 연 것이 보인다. 아주머니가 아침먹을꺼면 이리로 오라고 호객행위를 한다. 사실 호객행위를 꽤나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호객행위를 하는 곳은 가려다가도 안가게 되는 성격이라 꺼려졌다. 하지만 아주머니가 학생이니까 천원씩 깍아준다고 했다. 들어갔다.
△ 수용인원 1600여명의 목포-제주간 훼리
밥을 먹고 배를 탔다. 훼리는 정말 컸다. 부대 시설로 편의점부터 시작해서 레스토랑, PC방에 목욕탕 까지 있었다. 하지만 4시간 30분정도면 갈텐데. 3등실은 생각보다 깨끗하고 좋았다.
일곱째날
한라산
△ 한라산 오르는 길에 본 푯말
한라산은 일단 입산을 하면 대피소를 포함 쓰레기통이 전혀 없었다. 우리는 발생하는 쓰레기를 모두 가방에 넣어 다시 가지고 왔다. 그런데 시작부터 함께 올라간 고등학교 수학여행 무리가 있었는데 대피소에서 도시락을 먹는걸 보았다. 거센 바람에 여기저기 그 고등학생 무리들의 쓰레기가 날렸다. 대피소에서는 여러차례 쓰레기를 다시 가지고 가야 된다고 방송을 해 댔지만 아이들에게는 소귀의 경읽이였다.
△ 한라산 오르는 길. 해발 1900미터 지점.
대피소를 지나자마자 맑았던 날씨가 급 흐려지기 시작했다. 산 아래 풍경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 한라산 동능 정상
결국 정상에 올랐지만 짙은 안개 때문에 저 아래 백록담도 보이지 않았다. 이런 젠장! 하산 한계시간까지 정상에서 기다려 볼까 했지만 극심한 바람과 추위에 그럴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결국 관음사쪽 코스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반쯤 내려갔을 때인가 갑자기 날씨가 개더니 햇볕이 쨍쨍 비추기 시작했다. 정상에 있을 때는 흐리더니... 제주도의 날씨가 그토록 원망스러울줄은 몰랐다. 장마기간이어서 더 심했긴 했겠지만.. 관음사 코스로 내려오니 버스가 다니지 않았다. 택시를 타기는 돈이 아까웠다. 한참을 땡볕에서 걸었다.
여덟째날
주상절리 - 정방폭포
△ 정방폭포에서 바라본 바다풍경
고등학교때 천지연등 다른 폭포는 가 보았기에 이번에는 정방폭포를 택했다. 정방폭포 입구에 다 와갈 무렵 다리 하나를 지났는데 밑에 물이 흐르는 것이 보였다. 냇가는 그리 깨끗하지 않았다. 발을 담글 만하지 않았던 것이다. 폭포에 가 보니 아까 그 냇물이 이 폭포의 바로 위 상류라는걸 알 수 있었다. 폭포 아래에서는 사람들이 발을 담그는 둥 난리였다.
내일은 배에서 밤을 보낼예정이기에 오늘이 제주에서 보내는 실질적인 마지막 밤이었다. 숙소에서 나와 맥주 두캔을 사들고 바다에 접한 작은 정자에 앉아 홀짝였다. (오가는 길에 야구연습장에서 배팅대결을 했는데 내가 완승을 했다)
아홉째날
성산일출봉 - 만장굴
△ 성산일출봉과 그 위에서 내려다본 풍경
아침 일찍 나와 성산에 도착하니 아직 안개가 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근처 농협 하나로마트에서 빵이랑 음료수를 사서 먹으며 시야가 좋아지기를 기다렸다. 얼마후 안개는 모두 걷히고 맑은 대기가 펼쳐졌다. 우리가 도착했을부렵 벌써 내려오는 이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과연 무엇을 보았을까.
△ 용천굴 입구 추정.
시외버스에서 내려 김녕사굴과 만장굴방향으로 향하던중 도로 옆으로 느닷없이 안내표지가 서 있고 용천굴이라고 적혀 있었다. 용천굴?? 지도에도 표시되어 있지 않았기에 당황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굴은커녕 허허벌판 한가운데다. 완전히 벙찐 기분으로 어쩔 수 없이 안내글을 읽어 봤다. 2005년 전신주 교체 작업을 하다가 발견된 동굴로 총연장 2.5Km 란다. 전신주 교체 작업이라. 안내표지 옆에 보니 전신주가 하나 서 있고 그 밑에 쇠판을 하나 덮어 둔게 보였다. 처음에는 별 생각 없었는데 이 안내를 읽고 또 쇠판 위에 무인경비 시스템 스티커가(조금 웃겼음) 붙어 있는걸 보니 여기가 입구인 것 같았다. 지금은 보존을 위해 비개방 상태라고 했다.
열째날
14시간이 넘는 항해시간은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다. 사실 시설은 폭포-제주간 훼리보다 못할지도 모른다. 승객도 훨씬 많아 혼잡했다. 방이 비좁아 사람들은 복도나 로비에 담요를 가져와 깔고 잤다. 활기가 넘쳤다. 사람들은 갑판으로 나와 싸온 음식에 술을 한잔 기울이며 분위기를 만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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